도다리쑥국
“도다리!” 하고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보면 혀끝이 스르르 말린다. ‘ㄷ’과 ‘ㄹ’의 어우러짐이 금세 혀끝을 도리질하게 만든다. 봄과 도다리는 한 묶음이다. 봄은 도다리와 함께 통째로 온다. 바다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봄기운이 감돌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기지개를 편다. 바닥을 치면서 불끈 솟구친다.
도다리는 봄에 살이 통통 오르고 맛도 으뜸이다. 겨울에는 제주바다에서 산란을 하다가, 봄이 되면 남해안으로 올라온다. 산란할 땐 살이 적고 육질도 푸석하다. 봄 도다리는 두툼하고 살이 쫄깃하다.
광어는 대부분 양식이다. 하지만 도다리는 대부분 자연산이다. 도다리도 양식이 가능하지만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 잡히는 양이 비교적 많을뿐더러, 1∼2년 키워봐야 잘 크지도 않는다. 인공사료를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사료 값 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굳이 양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내 양식 도다리는 대부분 값싼 중국산이라고 보면 된다.
봄 도다리는 해쑥과 궁합이 딱 맞는다. 남해안 통영 거제 고성 여수사람들은 정월대보름이 지날 때쯤이면 마음이 달뜬다. 도다리쑥국 먹을 마음에 ‘입 몸살, 혀 몸살’을 앓는다. 해쑥이 나오기 전까진 도다리미역국을 끓여먹지만, 해쑥 넣은 도다리국과 감히 그 맛을 비교할 수 없다.
해쑥은 거문도 욕지도 사량도 한산도 등 남해바다 섬들의 논두렁밭두렁에서 자란 조선 쑥이다. 겨우내 바닷바람을 맞으며 언 땅을 뚫고 나온 여린 쑥이다. 향이 은근히 깊고 줄기가 부드럽다. 향이 덜한 비닐하우스 쑥은 그 옆에 가지도 못한다. 쑥은 4월쯤이면 질기고 억세어 못 먹게 된다. 그때쯤이 바로 도다리쑥국 끝물이다. 다시 1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도다리쑥국 요리법은 간단하다. 육수에 된장 풀고 도다리 탕! 탕! 잘라 넣으면 끝이다. 여린 해쑥(파+다진 마늘)은 도다리가 완전히 익은 뒤에 넣는다. 너무 일찍 넣으면 쑥이 풀어지고, 향이 사라진다. 색이 노랗게 되어 질겨진다.
요즘 통영에 가면 시내 어디에서나 도다리쑥국을 먹을 수 있다. 졸복국도 한창이다. 시락국으로 이름난 여객선터미널 옆 서호시장 부근에 몰려있다. 보통 도다리쑥국은 1만2000원 안팎, 졸복국은 1만 원 선이다. 파래무침 멸치젓 등 밑반찬도 소박 정갈하다. 분소식당(055-644-0495) 터미널회식당(055-641-0711) 수정식당(055-644-0396) 한산섬식당(055-642-8021) 명실식당(055-645-2598) 동광식당(055-644-1112) 금미식당(055-643-2987) 호동식당(055-645-3138) 만성식당(055-645-2140) 등이 붐빈다.
도다리쑥국엔 멍게비빔밥이 어울린다. 맨 쌀밥에 먹는 것보다 맛이 훨씬 오묘하다. 멍게는 우렁쉥이다.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무척추동물이다. 바위에 붙거나 바다 밑바닥에 파묻혀 산다. 겉은 우둘투둘 볼품없지만, 맛은 기가 막히다. ‘바다의 파인애플’이라고 할 수 있다. 상큼 쌉싸래한 단맛이 어우러져 스르르 침이 고인다. 바다에서 나오는 모든 맛의 종합세트다. 향긋하다.
멍게비빔밥은 통영 어느 식당이나 기본이다.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다. 멍게젓갈에 새싹 김가루 깨 등을 섞어 밥과 비벼 먹는다. 혀에 담은 뒤끝이 자꾸만 더 먹으라고 채근댄다. 천하의 밥도둑이다.
서울에도 통영음식 전문식당이 있다. 다동 하나은행 본점 뒤 충무집(02-776-4088)은 매일 통영에서 직송된 생선과 해쑥으로 맛을 낸다. ‘도다리쑥국+멍게비빔밥’ 1만8000원, ‘도다리쑥국+맨밥’ 1만5000원이다. 숭어 병어 방어 농어 등 횟감도 많다. 1주일 전쯤 예약해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쑥은 도다리의 완고한 뼈를 부드럽게 해준다. 우파 도다리가 좌파 광어를 아량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속삭인다. 쑥은 이 세상 온갖 날선 것들을 부드럽게 해주는 모깃불인 것이다.
‘갓 시집 온 아낙이 물쑥 한 바구니 이고 간다 그 쑥 밥이 되고 떡이 되어 흉년의 주린 배 채우고 그 쑥 차가 되고 뜸이 되어 젖은 골수 덥히어 대대로 이어왔다 향긋한 약쑥 모깃불 되어 풋잠 자는 평상 위 고단한 뼈 펴주었다’
<임형신의 ‘쑥의 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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