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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서영아]“어디로 피난가죠?” 섬나라 일본의 방사능 공포

입력 | 2011-03-18 03:00:00


서영아 교육복지부장

흔히 일본의 민족성을 논할 때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라는 점이 꼽힌다. 이 표현에는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포함돼 있다.

더 도망갈 곳이 없기에 좁은 땅에 모여 살아도 서로 부딪침이 없도록 배려와 협력의 문화를 일궈온 반면, 멀리 크게 보지 못하고 지엽말단에 매달리는 답답함과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매뉴얼 사회의 문제점도 흔히 지적된다.

도망갈 곳이 없다는, 이들의 DNA에 각인된 무의식을 자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록적인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피해에 이어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안겨다주는 불안감이 일본을 짓누르는 것.

사고 원전에서 불과 200여 km 떨어진 인구 1000만 대도시 도쿄는 더욱 불안에 휩싸여 있다. 여차할 경우 하루 만에 방사성 물질이 도달할 수도 있다지만 도망갈 곳도, 도망갈 방도도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 엑소더스도 시작됐다. 도쿄보다 서쪽으로 거점을 옮기는 대사관, 외국기업, 언론사들의 움직임이 보도되면서 도쿄인들의 불안은 더욱 가중된다. 삶의 터전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실제로 필자가 만난 도쿄 사람들은 혹 원전 사고가 악화돼 이곳에도 영향이 미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할 수 없지 않으냐”며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원전 주변지역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일찌감치 반경 20km까지는 피난 지시를, 20∼30km는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부득이하게 외출한다면 피부를 최대한 가리고 공기에 노출됐던 옷은 비닐봉지에 밀봉해 폐기하고 몸을 물로 씻으라고 한다. 가능한 일일까.

“물자 부족이 가장 괴롭다. 물자를 옮기는 분들이 여기까지 와주지를 않는다.”

16일 NHK에서 들린 이와키 시장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원전 반경 30km권에 위치해 외출금지령이 떨어진 이와키 시에 운전사들이 아예 근접하기를 꺼린다는 얘기다. 트위터에서도 주민들의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피난을 어떻게 가라는 거냐. 휘발유가 없어 차를 움직일 수가 없는데….”

“방사성 물질에 노출된 옷은 비닐봉지에 넣어 버리라는데, 갈아입을 옷조차 없다.”

“집에서 버틸 만한 물과 식량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고립된 지역부터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에서는 방사성 물질 누출 사태를 막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 17일에도 이어지고 있다. 만에 하나 이들의 노력이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한국에도 재앙이 된다. 부디 좋은 소식이 있기를 이웃 일본을 위해, 나아가 한국을 위해 빌 뿐이다. ―도쿄에서

서영아 교육복지부장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