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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움직이는 땅

입력 | 2011-03-18 03:00:00


“에베레스트여, 너는 자라지 못하지만 나는 자란다.”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평소 이렇게 말하며 세계 최고봉 등정에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힐러리 경의 말은 틀렸다. 에베레스트 산이 있는 히말라야 산맥이 매년 조금씩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에 존재하는 석회암층은 과거 이곳이 해저(海底)였음을 말해준다. 지금도 인도 대륙이 북상하면서 히말라야 산맥을 밀어올리고 있다.

▷지각 판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독일 기상학자 알프레트 베게너였다. 여러 차례의 그린란드 탐험, 동식물 분포 및 화석 연구를 통해 대륙들이 처음엔 하나의 대륙이었고 그 후 서로 떨어져 지금의 위치로 움직여 갔다는 대륙이동설을 1912년 발표했다. 다만 어떤 힘이 대륙을 이동시켰는지를 몰랐기에 다른 학자들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는 1930년 그린란드에서 길을 잃어 동사(凍死)했다.

▷지금은 지구 내부의 움직이는 맨틀 위에 지각이 오렌지 껍질처럼 얹혀져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정교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덕분에 대륙들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움직이고 있는지 정확히 계산할 수도 있다. 유럽과 북미대륙은 멀어지고 있고 북미는 아시아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태평양은 지중해처럼 작아지고 대서양은 거대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쓴 미국 저술가 빌 브라이슨은 “충분히 오래 기다린다면 움직이는 대륙을 타고 여행할 수도 있다”고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동(東)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본토가 동쪽으로 2.5∼2.6m 움직였고 한반도 역시 동쪽으로 조금 이동했다고 한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서울이 2.1cm 이동한 것을 비롯해 울릉도와 독도 주변이 5.2cm가량 동쪽으로 옮겨졌다고 발표했다. 한반도는 1년 평균 2∼3cm씩 이동하고 있다. 이번 지진에 한반도마저 1, 2년에 걸쳐 움직일 거리를 단번에 이동했으니 얼마나 큰 지진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이탈리아 지구물리학·화산연구소는 이번 지진으로 지구 자전축이 10cm가량 이동했다고 발표했다. 대륙을 이동시키고 자전축을 바꾸는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느낀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