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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리비아 비행금지구역

입력 | 2011-03-19 03:00:00


인도 타지마할이나 페루 마추픽추 상공에는 역사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비행금지구역(No-fly zone)이 설정돼 있다.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건물 상공,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과 관청가 화이트홀 상공도 국가 안보를 위해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청와대를 중심으로 일정한 반경으로 그어진 수도권 비행금지구역이 있다. 그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 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자국민 민주화 시위대를 전투기로 폭격하는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만행을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다.

▷냉전 종식 이후 국가의 주권을 제한하는 최초의 비행금지구역은 1991년 이라크 영공에 만들어졌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북부 쿠르드족에 전투기로 폭격을 가하자 미국 영국 프랑스 터키가 나서 이라크 북부를 비행금지구역으로 묶어 놓았다. 그러나 이 조치가 유엔 안보리의 명시적 결의 없이 이뤄지는 바람에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유엔 사무총장은 불법이라고 비난했다. 안보리의 결의에 따른 최초의 비행금지구역은 1993년 세르비아인의 코소보인 학살을 막기 위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영공에 설정됐다.

▷이번 리비아 영공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시위군이 먼저 요구하고 아랍연맹이 지지한 것이다.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가 당초 반대에서 기권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아랍연맹의 압박 때문이다. 비행금지구역은 비무장지대와 비슷한 면이 있다.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한쪽 당사자가 금지구역을 침범하면 다른 쪽 당사자의 군사적 보복에 직면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한 문제가 없다. 본격적인 군사 개입이 어려울 때 주로 쓰이는 방법이다.

▷유엔 측 군대는 앞으로 미사일을 장착한 무인정찰기를 이용해 리비아 공군기가 날아다니는지 감시하게 된다. 사전정지작업으로 리비아 공군기가 이용하는 활주로를 파괴하고 유엔 측 정찰기에 위협이 되는 리비아 방공망을 부수기 위한 작전이 개시될 수 있다. 미 해군이 보유한 항공모함이 리비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도 가세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반군의 최후 보루인 벵가지마저 함락되고 나면 무자비한 보복이 시작돼 카다피의 공언대로 피의 강물이 흐를지도 모른다. 리비아 영공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꺼져가는 리비아의 민주화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