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 일본 축구대표팀의 경기 모습. 동아일보DB
남미의 공격축구와 유럽의 수비축구가 대 격전을 벌였던 칠레월드컵의 최종 승자는 브라질이었다.
당시 브라질대표팀에는 가린샤, 자갈로, 바바, 아마릴두, 산토스, 디디 등 세계 축구사에 빛나는 스타플레이어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칠레월드컵은 이렇게 브라질축구가 화려한 공격력을 만천하에 선보인 대회로도 유명하지만 그 보다 몇 배 더 이 대회가 빛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월드컵은 물론 올림픽 등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통틀어서도 칠레월드컵은 최고로 성공한 대회로 꼽힌다.
그 이유는 월드컵 개최 2년 전 칠레 국민들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재난을 당하고도 다시 일어나 월드컵이라는 큰 행사를 훌륭하게 치러냈기 때문이다.
1960년 5월22일 칠레 남부 발디비아 근처인 니에블라 서쪽 10㎞ 지점에서 리히터 규모 9.5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일본 지진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한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 EPA연합뉴스
그러나 끈기 있고 부지런한 칠레 국민들은 국난을 이겨내고 월드컵을 개최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를 했고,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때 칠레를 강타한 대지진은 1900년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지진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난 11일 강도 9.0의 대지진이 일어나 일본 동북부를 강타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불리는 이번 지진은 칠레 지진과 알래스카 지진(1964년 3월28일 발생, 규모 9.2),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2004년 12월26일 발생, 규모 9.1)에 이어 역대 4번째로 큰 규모.
지진에 이어 쓰나미가 강타하고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등의 사고가 잇달으며 일본 전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 스포츠계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일본 프로야구. 개막전을 약 2주 남고 터진 이번 재앙에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라쿠텐의 연고지인 센다이는 대지진 최악의 피해 지역으로 홈인 미야기구장은 균열, 누수 등을 크게 손상됐다. 세이부의 홈인 세이부돔은 여진으로 시범 경기를 모두 취소했다.
일본프로축구 J리그도 경기 취소가 잇따랐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경기 일정도 모두 연기됐다.
하지만 일본 스포츠 계는 일본올림픽위원회(JOC)를 중심으로 이재민 구호에 적극 동참하는 등 재난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기 위한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JOC가 소속 의료전문가로 이뤄진 의료 전담팀을 구성해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동북 지방에 파견했다. 또 JOC 사무국에서 성금을 받고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 일본 톱 스포츠 후원단체와 공동으로 방한용 파커와 신발 등을 피해 지역에 보냈다.
또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어 주니치 드래곤스가 시범경기에서 모인 입장료와 성금을 전액 이재민에게 기탁하기도 했다.
일본 지진 이재민을 위해 1000만엔을 성금으로 기부한 박찬호. 동아일보DB
1995년부터 4시즌 동안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에서 일본인 스타 노모 히데오와 한솥밥을 먹으며 생활했던 박찬호(오릭스)는 이재민 돕기에 써달라며 1000만엔(약 1억4000만원)을 기부했다.
아시아 최고의 축구스타로 꼽히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홈페이지에서 "일본 국민 여러분 힘내십시오"라는 위로의 글을 올리고, 성금을 냈다.
스포츠 단체도 팔을 걷어붙였다. 대한축구협회의 조중연 회장은 오구라 준지 일본축구협회(JFA) 회장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고, 25일 열린 온두라스와의 평가전 때 일본 대지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 시간을 가질 예정.
또한 이날 A매치 수익금의 일부를 지진 피해 돕기 성금으로 일본축구협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간바레 닛폰(힘내라 일본)!"
여러 스포츠 종목에서 서로 경쟁하며 발전을 해온 한국과 일본. 한일전이 벌어지는 경기장에서 늘 들었던 일본 응원단의 구호가 바로 "간바레 닛폰"이다.
일본이 하루빨리 정상을 되찾아 한일전이 벌어지고, "간바레 닛폰"이라는 일본 응원단의 힘찬 구호 소리를 경기장에서 다시 들었으면 좋겠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