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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주펑]‘카다피식 생존법’ 이번에도 통할까

입력 | 2011-03-22 03:00:00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20일 미국 등의 리비아 공습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결의안에 부합하는 군사행동이다. 이제 리비아와 카다피의 미래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됐다.

리비아의 강권 통치자 카다피는 하야하고 민중에게 권력을 넘기라는 서방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카다피가 군사적 진압을 통해 국내 반대세력을 숙청하고 철권통치를 다시 시작한다면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아프리카와 중동의 ‘재스민 혁명’이 이룩한 민주적 기치는 상당히 퇴색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국가의 강권 통치자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줄 수도 있다. 충분한 군사적 진압 의지와 행동만 있으면 민중의 민주화 요구는 폭력과 유혈사태라는 대가는 치르지만 평정될 수 있으며 정권도 다시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보리는 18일 결의를 통해 반카다피 세력이 카다피의 군사적 폭력에 짓밟히지 않도록 했다. 이는 민중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이자 정치적 항의 활동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을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의안이 통과되자 미국과 프랑스 등의 공습이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미국과 유럽을 자극해 무력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카다피 정부는 즉각 무조건적으로 결의안을 수용하고 정전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카다피는 입으로는 서방을 무서워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제2의 사담 후세인’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카다피가 2003년 12월 미국에 핵개발 포기 계획을 밝힌 것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스민 혁명의 파도 속에서 카다피는 자기의 권력, 일생 동안 이뤄온 ‘아프리카 풍운아’로서의 지위, 자신의 가족들이 리비아에서 가진 특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연연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차례로 권력이 넘어갈 때도 자신이 ‘세 번째’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진 권력 기반과 수단인 가족 소유의 거대한 석유 달러, 자신의 용병부대, 자신이 속한 부족의 절대적인 지지 등을 통해 입지를 다지려 했다.

19일 카다피 정부군이 서부 도시 벵가지 진입을 시작하면서 반대 세력을 철저히 궤멸시키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벵가지가 카다피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은 서방으로서는 리비아의 반카다피 민중운동이 종말을 고하는 것이자 카다피 하야를 놓고 겨뤄온 서방과의 대결에서 카다피가 승리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 프랑스 등의 리비아 공습은 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을 이어가려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벵가지를 지키는 것은 리비아 민주화의 불씨를 지키려는 것이었다.

다만 지상군 투입 없이 카다피의 군사 역량을 무력화하고 정권을 내놓게 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카다피의 생존 능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그는 과거 42년간 아프리카의 ‘정치적 귀재’로서 서방과의 관계에서 여러 기복을 겪으면서도 집권을 유지해왔다.

그는 아프리카의 젊은층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역사적 정치 인물’이라는 칭호도 갖고 있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생존술 중에는 자신이 ‘(서방으로부터) 극도로 미움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어, (리비아나 아프리카로부터는) 극도로 사랑을 받도록’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연출하며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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