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때 의정부사관 출신 김대업 씨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병풍(兵風)은 위력적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김 씨를 ‘의인(義人)’으로 치켜세웠지만 병풍은 실체 없는 ‘허풍’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2004년 김 씨의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김 씨의 폭로가) 한나라당 후보에게 불리한 영향을 주겠다는 현실적 악의가 있지 않았나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 후보의 ‘20만 달러 수수설’과 부인 한인옥 씨의 ‘기양건설 자금 10억 원 수수설’도 제기했지만 모두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3대 의혹은 여권(당시 민주당 측)의 대선 공작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직격탄을 맞은 이 후보는 1997년 대선에 이어 또 낙선했다.
▷2002년 8월 민주당 이해찬 의원은 기자들에게 검찰로부터 ‘병풍 유도 발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검찰 측이 “국회에서 (이 후보 아들) 병역면제 의혹을 거론해 수사 계기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김대업 씨는 2008년 1월 모 방송사 PD에게 보낸 e메일에서 “(노무현 정권 시절) 권력의 맛에 취해 신의(信義)를 저버린 사람들에게 한마디하고 싶다”고 말했다. 병풍 공작의 이면을 공개하겠다는 뜻으로 들렸으나 김 씨는 그 후 입을 다물었다.
▷1997년 대선에선 당시 여권이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를 겨냥한 북풍(北風)이 벌어졌다.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북한 당국이 김 후보에게 호의적’이라고 쓴 편지가 공표되고, 재미교포 윤홍준 씨가 김 후보 비방회견을 한 배후에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법원은 권영해 당시 안기부장에 대해 이 같은 북풍 공작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5년의 원심을 확정했다.
▷2007년 대선 때 BBK 의혹 제기의 핵심 인물인 에리카 김 씨가 최근 검찰 조사에서 “대선 직전 통합민주당 측으로부터 ‘한국에 들어와 선거를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진술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기획입국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정치 공작으로 민의(民意)를 바꾸려는 시도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짓인데, 내년 대선에선 어떨지….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