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잘하라고 등 떠미는 시대의 생존법
“더, 더, 더, 더….”
한 단어도 채 내뱉지 못한다.
카메라를 2011년 대한민국으로 돌려 보자.
반장 선거 후보연설에 나선 초등학생부터 입사 면접을 보는 대학생, 사업을 따내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직장인, 그리고 임직원들에게 연설하는 최고경영자(CEO)까지. 어느 순간 ‘말하기’가 삶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말하기는 때로 인생의 중대 기로에서 운명을 바꿔 놓기까지 한다. 스피치 기법을 담은 책이 쏟아지고 스피치 학원이 번성하는 현실은 수많은 ‘한국판 조지 6세’들이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말하기 공식’에 짓눌린 한국
한국사회는 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말 잘하는 사람은 사기꾼’, ‘입만 살았다’, ‘말만 번지르르’ 등과 같은 표현이 이를 반영한다. 김미경 아트스피치연구원 대표는 “한국은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보다는 ‘침묵은 금이다’라는 쪽에 훨씬 무게를 둔 사회”라고 분석했다. 당연히 말하기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스피치 학원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 나갈 학생에게 연설을 시작할 때 “○○○(담임교사 이름) 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라며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남자 주인공 현빈이 했던 대사를 사용해 웃음을 유도하도록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달달 외우다 보니 입사 면접 때 지원자들이 특정 질문에 똑같은 답을 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한 기업의 임원은 “채용 인터뷰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남자 친구가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있었는데 몇 달 전 헤어졌다’고 답한다”고 말했다. 면접 가이드에 ‘남자친구가 한 번도 없었다고 하면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찍히고, 현재 남자친구가 있다면 곧 결혼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준다’며 이렇게 답하라고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기에 대해 고민하는 직종도 늘어나고 있다. 설교만 시작하면 신도들이 졸기 시작한다고 털어놓는 목사, 환자에게 어떻게 말해야 병원 운영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하는 의사는 물론이고 복잡한 숫자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회계사도 있다. 법정에 선 사람들이 진실하게 말할 수 있도록 자신의 말하기 방식에 신경 쓰는 판사도 있다. 이공계 분야의 연구원들 역시 복잡한 이론이나 연구 결과를 정책 담당자나 대중에게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 간결하게, 자연스럽게, 진솔하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