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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추상화 같은 음악극… 의미 부여는 관객 몫

입력 | 2011-03-29 03:00:00

음악극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무대 ★★★★☆ 연출 ★★★★☆ 음악 ★★★★




중세 음악 전문 보컬그룹인 힐리어드 앙상블 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은 음악극 ‘그 집에 갔 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LG아트센터 제공

뭔가 굉장한 작품인 것 같은데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추상화. 27, 28일 이틀간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아시아에선 초연된 음악극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하이너 괴벨스 작·연출)는 딱 그런 느낌이었다.

2008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초연 이후 ‘콘서트와 퍼포먼스, 연극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을 받은 만큼 이 작품은 연극, 뮤지컬, 콘서트 등 기존 무대 문법에 익숙한 관객에게 한없이 낯설다. 스토리도, 주인공도, 심금을 울리는 화려한 음악도 없다.

실물을 옮겨 놓은 듯 사실적인 거실(1막), 집(2막), 호텔 방(3막)에서 고(古)음악 전문 보컬인 영국의 힐리어드 앙상블 멤버 4명이 20세기 서구 문학을 대표하는 문호들의 시구나 산문을 표정 없이 읊조린다. 반주 없이 아카펠라 창법으로만 소화하는데, 기계 장치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규칙적이고 때로 무미건조하다.

각 장면엔 노래 가사로 쓰인 텍스트가 있다. 1막에선 영국 모더니즘 시인 T S 엘리엇이 22세에 쓴 시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2막에선 프랑스 문필가 모리스 블랑쇼의 산문 ‘낮의 광기’. 3막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산문시 ‘워스트워드 호’가 사용됐다. 2막과 3막 사이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짧은 산문 ‘산으로 가는 소풍’의 한 대목이 나온다. 모두 난해하기로 정평이 난 글들이다. 여기에 염불에 가깝기도 한 중세풍의 지루한 창법은 국내 관객이 재미를 느끼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해당 텍스트를 귀로 받아들이는 관객과 자막으로 쫓아야 하는 관객 사이에는 작품 이해에 상당한 거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작품을 즐기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작곡과 연출을 맡은 독일 출신의 괴벨스 씨는 “텍스트들은 ‘승리하는 개인’보다는 ‘분열되고 불안정하며 쇠약한 20세기의 개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며 또 한편으론 “(이 작품은)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3막에선 아예 자막을 내보내지 않은 것도 무대에 집중하라는 연출가의 의도다.

일상의 디테일을 한껏 살린 무대미학에 눈길이 간다. 하지만 배우와 세트, 소품과 텍스트, 음악과 시각 이미지들은 어느 하나 부각되는 법이 없다. 찻잔 내려놓는 소리, 물 따르는 소리, 쓰레기봉투를 수거통에 떨어뜨리는 소리,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등 일상의 소음조차 작품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담백한 성찬(盛饌)을 앞에 두고 무엇으로 배를 채울지는 관객 몫이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질 때 누군가는 기립박수를 쳤고 다수의 누군가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볐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31일부터 이틀간 경남 통영시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2만∼8만 원. 055-645-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