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배인준
‘미군 의존 한계’로 국방개혁 절실
머리 좋고 건장한 젊은이들이 군에 안 가고 공백 없이 정진하면 과학기술도, 예능도, 스포츠도 더 발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국가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인생 100살 시대에 2년을 못 참겠다며 병역을 기피하려는 사람들을 누가 대신 지켜주겠는가. 리언 러포트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우리 군 당국자가 ‘아들을 군에 보내는 부모들의 걱정’을 얘기하자 “미국 부모들이라고 자식을, 더구나 한국까지 보내고 싶겠는가”라고 반문했다.
6·25전쟁 이후 60년 동안 국방을 미군에 의존한 탓에 안보 의타심이 체질화됐지만 우리가 미군 등 뒤에서 편히 잠잘 날은 오래갈 수 없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한테서 넘겨받는 시점이 2015년 12월로 늦춰졌으나 그때까지 4년 8개월인들 안심할 수 있을까. 천안함과 연평도 피격을 미군이 막아주던가.
전작권 환수와 한미연합사 해체가 이루어진 뒤는 더 불안하다. 이 안보불안에 대처할 주체는 대한민국 대통령과 군과 국민이다. 2005년 노 정부가 전작권을 넘겨받겠다고 했을 때 가장 반긴 사람은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었다. 미국 자체의 한계 때문에 한반도 유사시 미군에 의존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여기에 대한민국 국방개혁의 절실함이 깔려있다.
그런데 3월 7일 이명박 대통령이 김관진 국방장관의 보고를 받고 재가했다는 ‘국방개혁 307계획’에 대해 군 일각과 예비역 일부가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 안보의식 결집이야말로 국방의 핵심인프라다. 국민을 뭉치게 해야 할 대통령과 군과 예비역 사이에서 불신과 불화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국민통합은 더 멀어진다. 청와대와 전현직 군이 대화와 신뢰로 공감대를 만들지 못한다면 국방개혁은 실패할 소지가 커진다.
현역과 예비역이 연계된 각군의 이기주의는 우려할 부분이 있다. 군도 엄연히 직업인들의 집단이라 이들에게도 사익(私益)과 집단이익이 있다. 그러나 여타 직업인과는 좀 다른 대승적 자세를 군계(軍界)에 바라고 싶다. 왜 그래야 되는지 굳이 따지자면 국민으로서 할 말도 적지 않다.
어떤 군사체계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군의 현행 상부지휘구조가 드러낸 문제점은 지혜를 모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합참의장 권한 강화에 대해 ‘문민 통제’라는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고, 군의 영향력을 너무 커지게 해서 쿠데타의 우려도 있다는 식의 반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307계획상의 합참의장 권한은 문민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다.
쌍방향 신뢰 쌓기가 성공 열쇠
별(장군 보직)이 줄어든다는 문제도 지난날 미국의 육군개혁 등을 볼 때 너무 과장할 일은 아니다. 국방개혁 반대의 속내가 밥그릇 투쟁이어서는 국민 지지를 못 얻는다. 군별로 동상이몽을 하며 육·해·공군 간의 세력다툼으로 개혁의 본질을 왜곡해서도 안 된다. 육·해·공군 어느 쪽도 자기 영역 보호본능을 버릴 수야 없겠지만 모함과 대립이 지나쳐 대적(對敵)상황에서 손발을 맞출 수 없는 지경이 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개혁의 주요과제인 ‘합동성 강화’도 각군의 전문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을 때 작전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합동성과 군별 전문성의 조화가 중요하다.
대통령과 핵심참모들은 예비역을 포함한 군이 청와대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의 뿌리를 이해해야 한다. 청와대가 책임질 일까지 군의 책임으로 떠넘긴다는 소리도 따갑게 들을 때다. 최고사령관(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군에 대한 신뢰와 애정의 끈을 놓아서는 물론 안 된다. 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결과적으로 개혁을 성공시키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 정부의 국방개혁 방향을 대체로 수긍하는 어느 예비역 장군은 “대통령이나 참모들이 군대를 안 갔다 왔을 수는 있다. 문제는 이들이 자기합리화 과정에서 똑똑한 머리로 장성들을 희화화(戱畵化)하려는 심리가 엿보인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예비역 의견에 담긴 충정을 끌어안고, 예비역은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안보를 위한 고뇌’를 평가해야 한다. 육사 28기인 장관이 새카만 후배라고 선배의 권위로 윽박지르려 해선 곤란하다.
병력 감축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아쉽다. 아무리 첨단군대라도 병력규모를 무시할 수는 없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군사력은 병력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국군은 50만 명으로 줄이고 북한군은 119만 명을 유지할 경우 국군의 인적 전력은 북한군의 5분의 1 이하가 된다. 북의 군사기술도 우습게 볼 수 없다. 병력 감축에 국내 정치적 고려까지 작용한다면 더 위험하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