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해장국
<강만 ‘콩나물시루’ 전문>
“주르륵∼ 줄줄줄∼!” 눈보라 치는 동짓달 새벽, 어머니가 윗목의 콩나물시루에 물을 준다. 몇 번씩이나 바가지로 퍼붓는 물세례. 아득한 잠결에 내 몸이 통째로 젖어 내린다. 어휴, 추워!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려 만다.
콩나물은 콩의 싹을 틔운 것이고, 숙주나물은 녹두의 싹을 틔운 것이다. 콩나물은 시루 바닥에 볏짚을 깔고 그 위에서 키운다. 물에 불린 콩을 볏짚에 놓아두면 제가 알아서 잘도 자란다. 콩은 한자로 대두(大豆)이다. 콩나물 콩도 그렇다. 하지만 말이 대두이지 보통 메주콩보다 작다. 쥐눈이콩 같은 게 바로 콩나물 콩이다. 소두(小豆)는 팥을 말한다.
콩나물은 ‘물의 싹’이다. 물을 먹여 콩의 싹을 틔운 것이다. 콩나물들은 노란 부리를 벌리고 앞 다퉈 목을 축인다. 시루 안은 어두컴컴하다. 검은 보자기로 손바닥만 한 시루주둥이마저 덮어씌웠기 때문이다. 콩나물은 어둠 속에서 큰다. 햇살은 불의 칼이다. 불칼을 맞으면 머리가 파르스름해지고 몸이 뻣뻣해진다.
콩나물 콩알은 작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에너지는 숯불처럼 뜨겁다. 콩나물시루는 뜨뜻하다.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려 크면 클수록 더욱 달아오른다. 엿기름을 만들 때 보릿자루에 물을 부어 싹을 틔우면 뜨끈뜨끈해지는 것과 같다.
모든 생명은 자랄수록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 사람도 어릴 적엔 에너지가 철철 넘친다. 그래서 아이들 몸은 뜨겁다. 콩나물은 물을 자주 흠뻑 줘서 그 열을 식혀줘야 한다. 물이 모자라면 콩나물이 썩는다. 전북 전주 사람들은 아예 콩나물 통을 이틀에 한 번쯤 시원한 물속에 푹 담갔다가 꺼내준다. 마치 ‘난 화분에 물 주듯’ 하는 것이다. 수돗물은 하루쯤 받아뒀다가 주는 게 좋다.
전주에 가면 콩나물해장국 집이 지천이다. 어느 식당이든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다. 전주사람들은 보통 단골집을 두세 군데는 가지고 있다. 한동안 한 집에 다니다가도, 어느 정도 지나면 또 다른 단골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사람 입맛처럼 싫증을 잘 내는 것도 없는 것이다.
전주 콩나물해장국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삼백집 식(사진)이고 또 하나는 남부시장 식이다. 삼백집(063-284-2227)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겁 없이 욕을 퍼부었던’ 욕쟁이 할머니로도 이름 난 곳이다. 하루에 딱 300그릇만 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백집 식은 서울 등 전주 이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주 콩나물해장국이다. 처음부터 뚝배기에 밥, 삶은 콩나물, 육수, 갖은 양념을 넣어 펄펄 끓이다가 마지막에 날계란을 하나 톡 넣어 내놓는 식이다. 국물이 엄청 뜨겁다. 구수하고 걸쭉하다. 자칫 잘못하다간 입천장을 덴다. 눈물 콧물에 땀이 한 말은 쏟아진다.
남부시장 식은 시간에 쫓기는 시장통의 노동자들이나 상인들이 즐기던 것이다. 뚝배기에 먼저 고슬고슬 식은 밥을 넣은 다음, 거기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면서 덥히는 것(토렴)’이다. 한마디로 국수처럼 여러 번 말아내는 방식이다. 살짝 데친 콩나물은 맨 나중에 넣는다. 뜨겁진 않지만 담백하고 시원하다. 밥알이 삼백집 식처럼 퍼지지 않아 끝까지 살아 씹힌다. 현대옥(063-228-0020, 서울수유동점 02-998-5565)과 왱이집(063-287-6980)이 대표적이다.
전주 콩나물해장국은 어느 식이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다. 김 가루, 결대로 찢은 쇠고기장조림, 어슷하게 썬 칼칼하고 매운 청양고추, 약간 신 김치, 오징어 젓갈 등이 나오는 것도 비슷하다. 국물도 대동소이하다. 북어, 멸치, 다시마, 새우, 조개, 미역, 파, 무, 양지머리 뼈 등 20여 가지를 섞어 밤새 우려낸다. 파 마늘 고추는 즉석에서 다져낸다. 김도 즉석에서 굽고 미리 잘라놓지 않는다. 미리 다지거나 잘라놓으면 고유의 맛과 향이 가시기 때문이다.
콩나물은 술독에 으뜸이다. 술꾼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쓰린 속도, 쥐어짜듯 아픈 속도, 스르르 어머니 약손처럼 풀어준다. 아스파라긴이라는 아미노산이 알코올을 달래주는 것이다. 콩나물해장국엔 모주 한잔 곁들여야 제 맛이 난다. 모주는 막걸리에 흑설탕과 생강 대추 감초 인삼 칡 계피가루 등 각종 한약재를 넣고 밤새 끓인 것이다. 은근하게 달착지근하고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다. 술독에 응어리진 위장이 봄눈 녹듯 풀어진다.
왜 사내들은 만날 술만 마시는가? 강호는 늘 불온하다. 고수는 득시글하다. 세상에 대들어봐야 보나마나 백전백패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우선 콩나물처럼 머리부터 들이밀고 봐야 한다. 박성우 시인처럼 다짜고짜 악부터 써봐야 한다. ‘너만 성질 있냐?/나도 대가리부터 밀어 올린다.’(콩나물) 그렇다. 설령 머리통이 깨진들 어떠하랴. ‘꽃도 열매도 없는’ 그것들이 진하게 우러나 맑은 국물이 되는 것을. 시원하고 개운한 콩나물해장국이 되는 것을.
‘콩나물은/허공에 기둥 하나 밀어 올리다가/쇠기 전에 머리통을 버린다//참 좋다//쓰라린 새벽/꽃도 열매도 없는 기둥들이/제 몸을 우려내어/맑은 국물이 된다는 것//좋다 참/좋은 끝장이다’
<이정록의 ‘다시 나에게 쓰는 편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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