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DBR]석학 요시 셰피 MIT교수에게 듣는 ‘기업 복원력’

입력 | 2011-04-02 03:00:00

“외부 돌발사고 충격 줄이려면… 조직의 유연성 키워야”




 요시 셰피 교수

《 동일본 대지진, 리비아 공습 등 굵직한 사건들이 지구촌을 뒤흔들면서 기업 복원력(corporate resilience)이 경영계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재료공학에서 유래한 개념인 복원력은 물질이 변형 후에도 원래 형태로 돌아오려고 하듯, 위기로 타격을 입은 조직도 정상 상태로 돌아오려 노력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면서 복원력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테러 공격으로 본사 건물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려도 바로 다음 날 영업을 재개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시장의 작은 변화에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이 조직의 복원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은 위험 관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요시 셰피 교수(사진)와 e메일 인터뷰를 갖고 기업 복원력 및 위기 대응과 관련한 그의 통찰을 들어봤다. 기사 전문은 DBR 제78호(2011년 4월 1일자)에 실려 있다. 》
―경영에서 복원력이란 어떤 개념인가.

“예상치 못했던 위기로 조업 중단 등에 처한 기업이 평상 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리는 과정 및 위기 대응 역량을 뜻한다. 대지진을 겪은 일본에 이 개념을 적용하면 지진 전의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회복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말한다.”

―경영에서 복원력의 중요성이 커진 이유는….

“오늘날의 경영환경은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하고, 글로벌 공급망 또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인텔의 반도체 생산 과정을 보자. 반도체의 최초 형태는 일본 도시바가 만든 실리콘 웨이퍼다. 이 웨이퍼는 미 애리조나 주에 있는 인텔의 반도체 공장으로 옮겨져 반도체 판으로 만들어진다. 이 판은 베트남공장에서 잘게 쪼개지고 복잡한 공정을 거친 후 다시 애리조나 공장으로 온다. 태평양을 무려 세 번이나 건너야 반도체가 탄생하는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완성품은 다시 미국, 아일랜드, 브라질, 말레이시아 등 세계에 위치한 주요 컴퓨터 제조업체의 공장으로 보내진다. 이 과정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조그만 충격을 받으면 그 여파는 엄청나다. 마찬가지로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대규모 위기가 발생하면 개별 기업이 아무리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유했다 해도 복원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해당 기업과 연결돼 있는 수많은 다른 조직의 복원력은 통제하기 힘들 때가 많다.”

―복원력의 차이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한 사례가 있나.

“2000년 3월 미 뉴멕시코 주에 위치한 필립스의 반도체 공장에서 번개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곧 진화됐다. 화재 직후 필립스는 이 공장의 반도체 부품을 공급받는 노키아와 에릭손에 1주일의 조업 중단이 예상된다고 통보했다.

당시 이 화재가 비상사태로 비화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노키아는 즉시 해당 부품을 특별 관리 품목에 올리고 전 부서에 이 사실을 알렸다. 또 필립스와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면서 상황을 점검했다. 반면 에릭손의 담당자는 1주일만 지나면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경영진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화재 2주일 후 필립스는 생산 공정을 정상화하는 데 몇 개월이 더 걸린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진화 과정에서 반도체 공정의 핵심인 클린룸 시설이 오염됐기 때문이다. 이를 안 노키아는 전 세계 필립스 공장의 생산 여력을 모두 노키아에 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파악한 에릭손의 경영진은 뒤늦게 필립스로 달려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노키아가 필립스의 나머지 부품을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에릭손은 2000년 휴대전화 부문에서 25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화재 여파가 겹친 2001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2000년의 10%에서 6.7%로 더 떨어졌다. 에릭손은 휴대전화 생산 전면 중단 등의 비상조치를 취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에릭손이 잃은 시장점유율은 고스란히 노키아가 흡수했다.

노키아와 에릭손이 화재 통보를 받은 시점은 동일했다. 비교적 낮은 수준의 위기였지만 두 회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결국 10년이 지난 지금 노키아와 에릭손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다. 노키아는 여전히 세계 최대 휴대전화 제조업체지만 에릭손은 업계의 하위권으로 밀려 일본 소니와 합병을 해야 했다. 조그만 화재에 대한 초동 대처가 개별 기업의 운명은 물론이고 산업 전체의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조직의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회사 전체가 높은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무조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공장을 요새로 만들고 재고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으라는 뜻이 아니다. 자사의 취약성을 제대로 분석하고 보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다음과 같다.

상상할 수 없는 위기까지 대비하는 기업과 현재의 편안함에만 안주하는 기업의 성적표는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대형 위기가 닥치는 순간 극명하게 갈린다. 위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복원력이야말로 21세기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DBR 그래픽

첫째, 조직 내 위기 대응 전담 부서의 의사 결정권이 지금보다 커져야 한다. 선진 기업은 최고위험관리담당자(CRO·Chief Risk Officer)나 최고보안담당자(CSO·Chief Security Officer)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IBM, 질레트의 보안담당 임원은 글로벌 운영위원회의 멤버이며 회사의 주요 의사 결정에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둘째, 자사의 위기관리 취약성을 평가할 때 자사의 상황뿐 아니라 협력업체 및 경쟁회사의 운영 상태도 파악해야 한다. 우리 회사의 현황이나 대응 능력만을 파악해서는 위기를 관리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제 지정학적 변화, 새로운 법규, 기상 예측 전망 등의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셋째, 자사에 닥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파악할 때 지역 사회와 협력하는 시민 감시 방식을 활용하라. 자사의 공장 직원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오히려 해당 설비의 위험 요소가 무엇인지 더 잘 알고 있을 때가 많다.

넷째, 공급업체를 선정하는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부품업체를 선정할 때 한 개 혹은 소수 업체와 거래하는 기업이 많다. 물론 가격 협상이 쉽고, 해당 부품업체와 돈독한 파트너십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급할 때 의존할 잉여 자원도 없어진다는 뜻이므로 일단 충격이 발생하면 조업이 즉각 중단될 수 있다. 위기에 대비해 언제든 여러 업체와 거래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지나치게 효율성에만 얽매이지 말고 잉여 자원을 축적하라는 뜻이다.

다섯째, 올바른 조직문화 구축에 투자하라. 직원 교육 시 한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다방면의 트레이닝과 순환근무를 통해 직원이 해당 기업의 전체 가치사슬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라. 충격이 발생했을 때 특정 직원이 없어도 다른 직원이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직원들이 위기 발생 시 이를 경영진에 보고하기 전에 스스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도 대폭 부여하는 게 좋다. 직원의 주인의식과 충성심이 강한 회사일수록 위기도 빨리 극복할 수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요시 셰피 교수는


이스라엘 출신인 요시 셰피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토목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MIT 엔지니어링 시스템학과의 학과장 및 운송물류연구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공급망 관리, 시스템 최적화, 위험 분석, 운송 알고리즘 분야의 석학이다. 저서로는 ‘리질리언트 엔터프라이즈(The Resilient Enterprise)’가 있다.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 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78호(2011년 4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공간을 재해석한 ‘오리시키 콘셉트’ 성공 비결

▼ METATREND Report


일본인 디자이너인 나오키 가와모토(川本尙毅)가 선보인 클러치백은 입체감이 살아있는 여성용 작은 핸드백이다. 하지만 이를 펼치면 순식간에 평면의 패널로 변한다. 그가 디자인한 슈트케이스(여행용 옷가방)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기에는 여느 슈트케이스와 다름없지만 집에 보관할 때에는 슈트케이스를 옷과 함께 펼쳐서 옷걸이에 통째로 걸어둘 수 있다. 이 슈트케이스는 여행 중에는 옷을 담는 공간이 되고, 집에서는 수납공간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일반 슈트케이스가 여행 중 요긴하게 쓰여도 집에 보관할 때 공간을 낭비한다는 점을 감안했다. 가와모토는 공간을 변환한 이들 제품을 ‘오리시키 콘셉트’라고 명명했다. 오리시키는 일본식 종이접기 공예인 ‘오리가미(折り紙)’와 방식을 뜻하는 ‘시키(式)’의 합성어이다.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인으로 심미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공간을 색다르게 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트렌드를 소개한다.



제품개발 ‘분업과 협력의 코드’ 활용 노하우

▼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


한 컴퓨터 서버 회사는 특정 부품을 한번 개발하기만 하면 여러 제품에 두루두루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공급업체에 부품 개발을 의뢰했다. 물론 이는 이론적으로 실현 가능한 계획이다. 하지만 성능 테스트에서 이 부품을 사용한 제품들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기적 상호작용과 기계적 상호작용, 열 상호작용 등 때문이었다. 이 회사는 부품이 제품 성능에 미치는 영향을 꽤 오랜 시간 연구했고 결국 최종 제품 개발은 하염없이 지연됐다. 결국 이 회사는 제품 개발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붓고 난 뒤 특정 부품을 한 개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려는 기존 계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협업을 하는 서로 다른 조직들이 제대로 융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다. 각기 다른 조직들은 산업, 지리적 위치, 시간대, 비즈니스 문화가 서로 다르다. 따라서 여러 조직이 복잡한 제품을 개발하는 협업을 할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작은 실패에서 ‘성공의 길’을 찾아라

▼ 실패학 연구


렌터카 업체인 허츠(Hertz)는 렌터카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다. 허츠는 고객을 여행자로만 한정해 뼈아픈 실책을 저질렀다.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차를 빌려 타려는 도심의 렌터카 수요를 간과한 것. 결국 허츠는 이 수요를 노리고 시장에 진입한 엔터프라이즈(Enterprize)에 추월당했다. 코닥은 기존 사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실책했다. 코닥은 1981년 디지털 사진이 100년 전통의 필름이나 종이 관련 산업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하지만 코닥은 기존 사업을 확대해서 디지털 기술을 역이용할 수 있다고 보고 오히려 기존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다.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과거의 성공에 지나친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설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이를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기업은 종종 시장의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 성공 방식을 답습하곤 한다. 잘나가는 기업일수록 활동적 타성의 덫에 빠질 위험이 높다. 기업들이 실패하는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