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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본 이 책]그대, 오래 살고 싶다면…

입력 | 2011-04-02 03:00:00

◇나는 몇 살까지 살까?하워드 S 프리드먼, 레슬리 R 마틴 지음·최수진 옮김 368쪽·1만6000원·쌤앤파커스




노인분들이 종종 “오래 살면 뭐 해? 딱 80까지만 살고 죽어야지” 하시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 그리고 장사꾼이 ‘남는 것 없다’고 하는 말과 더불어 ‘3대 거짓말’ 아니던가.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는 게 “뭘 먹어야 건강해지죠?”, “무슨 운동을 해야 좋을까요?”, “선생님은 무슨 건강식품을 드시나요?” 같은 질문이다. 솔직히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오히려 의사들이 건강은 더 못 챙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라 암에 걸리는 의사도 많고, 안타깝지만 실제로 세상을 일찍 떠나는 사람도 많다.

“매일 운동하고, 술 담배는 절대 안 하고, 몸에 좋다는 건 전부 다 챙겨 먹는 사람이었는데, 왜 이 친구가 더 빨리 죽었을까요?”(술 담배 많이 하시는 분들이 꼭 이렇게 물어본다), “과로에 스트레스도 엄청 받고 고기만 먹는 사람이 왜 이렇게 건강한 거죠?”,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걸 먹고 사는데, 왜 누구는 더 건강하고, 누구는 늘 골골대나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 역시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됐다. 비록 서양의 연구 결과지만 이런 궁금증을 해소해 줄 방대한 통계자료가 흥미로웠고, ‘건강에 관한 접근 방식’이 필자의 연구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이 반가웠다.

사람은 단순히 ‘육체’만으로 정의될 수 없는 존재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하는 것처럼, 건강(health)은 ‘단순히 질병이나 증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완전히 안녕(wellbeing)한 상태’다. 물론 ‘생명’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이 밝혀지면 이러한 정의도 바뀌겠지만, 필자 역시 아픈 부위만 다루는 질병 중심의 의학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에 대체의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궁금증에 일말의 해답을 주는 보기 드문 책이다. 192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존과 퍼트리샤라는 똑똑한 학생 두 명이 루이스 터먼 박사에게 불려갔다. 당시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이던 터먼 박사는 ‘지적인 리더십’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1910년 전후에 태어난 소년소녀 1500명을 선발해 이 아이들의 가정환경과 성격, 학업성취도, 교우관계 등을 자세히 조사했다.

이 연구는 터먼 박사의 후배 연구자들에게 이어져 발전됐고, 후배 연구자들은 참가자 1500명을 사망 시까지 따라다니며 이들의 직업, 결혼과 이혼 여부, 자녀 수, 사회적인 성공과 직업적 성취도, 은퇴 후 삶의 만족도, 취미, 습관, 종교, 인간관계, 사망원인 등을 총체적으로 조사하는 대규모 연구를 실시했다.

그런데 성격과 건강을 연구하던 건강심리학자 두 사람이 터먼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를 분석하면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삶의 다양한 요소 중에 성격이나 태도가 수명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 인간관계와 사회적 환경이 총체적으로 합쳐져 수명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그 두 사람이 바로 이 책을 쓴 캘리포니아대 심리학 교수 하워드 프리드먼과 레슬리 마틴이다.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1500명의 인생을 샅샅이 조사해서 얻은 이들의 결론은, 수명에 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요즘 시대에 더욱더 의미심장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최고경영자(CEO)가 아랫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 ‘긍정적인 생각이 정말로 건강에 이로운 것은 아닐 수도 있다’, ‘100세 노인의 낙천성은 장수의 비결이 아니라 그저 장수의 결과일 뿐이다’ 같은 주제들이 사뭇 흥미롭다. 그 외에 자살 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성격 유형이나, 똑같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도 더 빨리 회복하는 사람의 특징 같은 여러 궁금한 주제에 대해 방대한 통계 데이터를 가지고 증명해 보여주는데, 저자들의 집요한 검증과 유리알처럼 명쾌한 분석이 신뢰할 만하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현대의학의 편향된 연구들이 가져온 폐해와 ‘거의 모든 사람을 환자 취급하는’ 과잉진단도 날카롭게 지적하며 개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회적 패턴에 대해 진지하게 논한다. 이 대목 역시 의사로서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강승완 의학박사·서울대 보완통합의학 연구소 기획위원

이 책이 강조하는 것처럼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은 단순히 무엇을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이란, 단순한 행위의 조합이 아니라 몸과 마음,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의 총체적인 조화와 질서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건의료에 종사하는 전문가들뿐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원하는 일반인들도 건강을 단편적인 ‘행위’로 보는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이란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삶’이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들 역시 성실하고 진지한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장수했다는 연구 결과를 통해, 아무렇게나 함부로 살지 말고 ‘좋은 삶이 무엇인지, 더 건강한 인생 경로를 고민하며 살자’고 말한다. 개인이 혼자 고민하기 어렵다면 사회가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제 갈 길을 아는 사람에게 세상은 길을 비켜준다고 했던가? 건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기적인 치료법이나 유행 다이어트에 부르르 끓어오르거나 휩쓸려 다니기보다는 차분히 자신만의 건강한 인생 경로를 고민하고, 이 책을 통해 앞서서 건강하게 오래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패턴을 이해하고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강승완 의학박사·서울대 보완통합의학 연구소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