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살까지 살까?하워드 S 프리드먼, 레슬리 R 마틴 지음·최수진 옮김 368쪽·1만6000원·쌤앤파커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는 게 “뭘 먹어야 건강해지죠?”, “무슨 운동을 해야 좋을까요?”, “선생님은 무슨 건강식품을 드시나요?” 같은 질문이다. 솔직히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오히려 의사들이 건강은 더 못 챙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라 암에 걸리는 의사도 많고, 안타깝지만 실제로 세상을 일찍 떠나는 사람도 많다.
사람은 단순히 ‘육체’만으로 정의될 수 없는 존재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하는 것처럼, 건강(health)은 ‘단순히 질병이나 증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완전히 안녕(wellbeing)한 상태’다. 물론 ‘생명’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이 밝혀지면 이러한 정의도 바뀌겠지만, 필자 역시 아픈 부위만 다루는 질병 중심의 의학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에 대체의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궁금증에 일말의 해답을 주는 보기 드문 책이다. 192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존과 퍼트리샤라는 똑똑한 학생 두 명이 루이스 터먼 박사에게 불려갔다. 당시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이던 터먼 박사는 ‘지적인 리더십’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1910년 전후에 태어난 소년소녀 1500명을 선발해 이 아이들의 가정환경과 성격, 학업성취도, 교우관계 등을 자세히 조사했다.
이 연구는 터먼 박사의 후배 연구자들에게 이어져 발전됐고, 후배 연구자들은 참가자 1500명을 사망 시까지 따라다니며 이들의 직업, 결혼과 이혼 여부, 자녀 수, 사회적인 성공과 직업적 성취도, 은퇴 후 삶의 만족도, 취미, 습관, 종교, 인간관계, 사망원인 등을 총체적으로 조사하는 대규모 연구를 실시했다.
그런데 성격과 건강을 연구하던 건강심리학자 두 사람이 터먼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를 분석하면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삶의 다양한 요소 중에 성격이나 태도가 수명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 인간관계와 사회적 환경이 총체적으로 합쳐져 수명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그 두 사람이 바로 이 책을 쓴 캘리포니아대 심리학 교수 하워드 프리드먼과 레슬리 마틴이다.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1500명의 인생을 샅샅이 조사해서 얻은 이들의 결론은, 수명에 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요즘 시대에 더욱더 의미심장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최고경영자(CEO)가 아랫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 ‘긍정적인 생각이 정말로 건강에 이로운 것은 아닐 수도 있다’, ‘100세 노인의 낙천성은 장수의 비결이 아니라 그저 장수의 결과일 뿐이다’ 같은 주제들이 사뭇 흥미롭다. 그 외에 자살 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성격 유형이나, 똑같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도 더 빨리 회복하는 사람의 특징 같은 여러 궁금한 주제에 대해 방대한 통계 데이터를 가지고 증명해 보여주는데, 저자들의 집요한 검증과 유리알처럼 명쾌한 분석이 신뢰할 만하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현대의학의 편향된 연구들이 가져온 폐해와 ‘거의 모든 사람을 환자 취급하는’ 과잉진단도 날카롭게 지적하며 개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회적 패턴에 대해 진지하게 논한다. 이 대목 역시 의사로서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강승완 의학박사·서울대 보완통합의학 연구소 기획위원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이란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삶’이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들 역시 성실하고 진지한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장수했다는 연구 결과를 통해, 아무렇게나 함부로 살지 말고 ‘좋은 삶이 무엇인지, 더 건강한 인생 경로를 고민하며 살자’고 말한다. 개인이 혼자 고민하기 어렵다면 사회가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제 갈 길을 아는 사람에게 세상은 길을 비켜준다고 했던가? 건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기적인 치료법이나 유행 다이어트에 부르르 끓어오르거나 휩쓸려 다니기보다는 차분히 자신만의 건강한 인생 경로를 고민하고, 이 책을 통해 앞서서 건강하게 오래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패턴을 이해하고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강승완 의학박사·서울대 보완통합의학 연구소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