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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구자룡]한중일, 그래도 함께 가야

입력 | 2011-04-04 03:00:00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로 3일까지 중국의 31개 성시 자치구 중 칭하이(靑海) 성을 제외한 30개 지역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인체에 영향이 없고 별다른 조치도 필요 없는 극미량’ 수준이지만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중일 3국이 운명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는 1위 무역 대상국이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과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일본의 역할은 작지 않았다. 역내 경제적 상호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대지진으로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동북아 3국이 단일 화폐를 사용하는 유로 경제권과 같은 수준은 아니더라도 경제 협력과 교류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다. 3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공동체나 동북아공동체를 주창하는 것도 3국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는 구상이다.

하지만 한중일 3국 간에는 마치 휴화산 같은 갈등 요소가 잠복해 있다. 최근 일본 정부의 검정에 통과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독도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자국 영토로 명기해 한중 양국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지방에 침탈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정으로 사죄하지 않는 묵은 ‘역사의 빚’을 안고 있다.

일본이 근대사의 업보를 청산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려 한다면 중국 장쑤(江蘇) 성 난징(南京)에 세워져 있는 ‘대도살 기념관’을 가보라.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1937년 대학살로 약 30만 명이 희생된 것을 기리는 기념관을 1시간여 둘러보면 마치 그날의 악몽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관람은 내외국인 모두 무료다. 난징에서는 “일본인 승객은 태우지 않는다”는 택시 운전사도 만날 수 있다.

일본 대지진 이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일왕에게 위로 전문을 보내고 2003년 주석 취임 이후 처음으로 주베이징(北京) 일본대사관을 찾아 희생자들을 조문했다. 하지만 중-일 간에 교과서 파동이나 영토 갈등이 불거지면 가슴속 깊은 곳에 잠재된 구원(舊怨)이 고개를 든다. 중국이 지난해 GDP 규모로 일본을 제쳤지만 격차를 더 벌려 과거에 당한 앙갚음을 해야 한다는 의식도 두드러진다.

한국에서는 대지진 후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류 스타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도 유례없는 모금활동을 벌여 한일 관계가 한층 고조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 파동으로 “역시나 일본은…” 하는 실망감이 높아졌다.

한중 간에는 한 해 500만 명 이상이 오가 세계 어느 나라들보다 인적 교류가 많다. 다만 ‘북한 변수’가 잠재적 마찰 요소다. 지난해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그리고 북한의 핵무장 과정에서 중국은 ‘북한 끌어안기’에 급급했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지지한다고 외치면서도 북한이 탈선할 때마다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소극적인 제재로 북한이 핵무장으로 가는 데 오히려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받는다.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과 핵무기 보유 선언 등은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일 때 이뤄졌다.

한중일 3국이 세계를 주도할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있어 과거와 편견이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사명이다. 3국 간에는 과거보다 다가올 미래가 더 길고, 갈등과 마찰보다는 협력과 공생 공영의 여지가 훨씬 크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