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로닉 본사 연구원들이 자사 레이저 의료기기의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창사 당시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겨냥한 차별화된 제품으로 레이저 의료기기 시장에서 아시아 2위, 세계 9위에 올랐다. 루트로닉 제공
황해령 대표 루트로닉 제공
평일 오전에 강의실에 앉아 있는 직원들은 영업이나 마케팅 부서 소속이 아닌 순수 개발인력이었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읽은 이 회사 황해령 대표는 “미국 현지에 세운 연구소와 동시에 제품개발을 진행하려면 엔지니어들도 영어에 능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직원이 180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벌써 미국 현지 연구소까지? 황 대표는 “우리 회사 제품 10개 가운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것이 7개”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 “싸구려는 안 만든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창업과 동시에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와 전략이 없었다면 루트로닉은 그저 그런 업체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그의 전략은 단순했다. 세계 레이저 의료기기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미국에 진출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과 처음부터 ‘싸구려’가 아닌 차별화된 제품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기술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루트로닉과 비슷한 시기에 레이저 의료기기 시장에 진입한 한 국내 중소기업은 저가형 제품에 중점을 뒀다. 10여 년 뒤인 현재 루트로닉은 그 기업보다 20배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 기술 찾아 해외로
자본금은 금세 바닥났다. 여기저기 대출받은 돈도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결국 아파트를 팔아 회사에 몽땅 털어넣었다. 그래도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챙겨줄 수 없었다. 그는 “루트로닉을 운영하면서 그때만큼 힘든 적이 없었지만 제품의 수준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고, 이것만 해결되면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 플러스알파를 찾아서
“이 제품 하나로 피부 색소치료 외에 피부 재생수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루트로닉은 자사(自社)의 레이저 의료기기를 팔 때 의사들에게 이렇게 접근했다. 의료기기의 가격은 기존 미국 제품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의사들은 비슷한 값에 여러 기능을 갖춘 루트로닉의 의료기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황 대표는 “흔히 중소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가격에만 치우쳐 싼 것을 만드는 데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차별화된 기능으로 공략해야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가격경쟁이 아니라 고(高)기능, 다(多)기능으로 승부하겠다는 루트로닉의 전략은 해외 의료진 초청교육으로 이어진다. 루트로닉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의료기기 수출국의 의사들을 본사로 초청해 사용법 등을 가르치고 있고,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해 지금까지 루트로닉 제품이 인용된 논문이 130여 편에 이른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