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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블루오션’을 찾아라]퇴직한 베이비부머들을 위한 창업 - 재취업 대책

입력 | 2011-04-08 03:00:00

액티브시니어여, 부끄러워 말고 공공기관 노크하라




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은평구청 내 ‘시니어비즈플라자’. 창업 컨설턴트와 상담을 마치고 나온 선상규 씨(54)는 모처럼 웃음을 보였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할 희망을 마침내 찾은 것.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 5년 동안 여러 기업체와 대학을 전전하며 설득해도 안 되던 일이었다. 선 씨는 “터널 끝 빛을 본 기분”이라고 말했다.

2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은평구 시니어비즈플라자는 선 씨와 같은 ‘시니어’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창업·재취업 컨설팅, 예비 창업자들끼리 정보 교류, 창업 관련 강의 등 다양한 활동이 진행된다. 여기서 말하는 시니어란 넓은 의미로는 창업과 재취업을 원하는 모든 고령자를 뜻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10년 이상 직장 경험이 있는 40세 이상의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춘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들의 창업과 재취업을 지원하는 첫 번째 시도가 바로 시니어비즈플라자다. 서울 은평구에 이어 노원구, 마포구, 경기 수원시, 의정부시, 부산 사하구 등 전국 6곳에 마련됐다.

일러스트레이션 황중환 기자 386c@donga.com

지난달 24일에는 시니어비즈플라자 운영 6주 만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1호 창업자’가 탄생했다. 노태범 씨(60)가 한 달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사업자등록증을 손에 쥔 것. 가정의 수도꼭지에 설치하면 수압이 세져 세정력이 좋아지는 기계를 사업화했다. 노 씨는 이 기술 외 5개의 특허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하지만 기술을 돈으로 연결하는 데에는 소질이 없었다. 시니어비즈플라자에서 노 씨와 상담을 진행한 김영기 한양대 금속공학 박사는 “기술·기계적 측면에서는 훌륭했다”며 “다만 사업계획서나 제안서 등을 세련되게 만들지 못해 그동안 창업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시니어비즈플라자의 도움을 얻어 사업자등록증을 손에 쥔 노 씨는 내친김에 중소기업청의 예비기술창업자 육성을 위한 자금 6000만 원까지 신청해 둔 상태다. 선 씨와 노 씨처럼 시니어들의 창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원 방식은 시니어비즈플라자를 중심으로 최근 체계적으로 확립돼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더 많은 시니어들이 원하는 것은 재취업이며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간 협력체계가 구축되지 않은 데다 사회적으로 재취업에 대한 인식 자체가 호의적이지 않다.

김진수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재취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아직 개선되지 않았다”며 “특히 정부 주도의 재취업 지원은 외면받기 일쑤인데 그동안 우리 정부의 정책이 ‘공적 부조’ 성격을 띠고 공공근로 등 ‘생계형’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니어 일자리 창출에 대한 정부 지원 체계가 창업에 집중된 것은 정부 주도로 단기간에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재취업에 성공한 시니어들의 성공 사례들이 늘고 있다. 2000년 대우전자에서 명예퇴직한 뒤 조그만 무역회사를 다니다 2008년 직장을 그만 둔 서우명 씨(55)는 현재 전국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재소자의 인성 함양을 위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12월 중소기업청의 지원을 받아 한국능률협회가 운영하는 재취업 프로그램인 ‘인성 함양 교육자 양성 과정’을 수료했다. 3개월 수강료가 150만 원이지만 서 씨가 낸 돈은 12만 원, 나머지는 정부가 부담했다. 서 씨는 “강의를 들은 후 인성 함양 프로그램을 재소자뿐만 아니라 기업, 학교 등으로 확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봉사+생계유지’의 성격을 가진 단체로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서 씨는 현재 강의 때마다 식비와 차비 등 실비에 해당하는 금액인 5만∼7만 원을 해당 기관에서 받고 있다. 생계에는 거의 보탬이 되지 않는 셈. 하지만 교도소뿐만 아니라 다른 곳으로 확대하면 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수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42세인 오치영 씨는 경기 구리시의 재취업 지원 사업을 통해 재취업에 성공했다. 대학 졸업 후 교육시설, 보험회사, 환경용역회사 등에서 일하다 지난해 9월 직장을 그만 뒀다. 오 씨는 “‘자존심’ 때문에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는 대신 매번 사설 업체의 정보를 이용했다”며 “하지만 최근 ‘액티브 시니어’ ‘슈퍼 시니어’ 등 정부 기관에서도 시니어들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구리시의 재취업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채용서류 작성부터 적성검사, 면접 방법 등 채용과 관련된 모든 교육 과정이 마련돼 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구리시가 중소기업과 채용을 연계해 주고 있어 교육 수강이 실제 재취업과 연계되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오 씨는 작년 말 경기도 인근의 폐기물 재활용업체의 과장으로 취직했다.

창업이나 재취업에 성공한 시니어들은 모두 “이제는 공공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중소기업청의 예산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시니어비즈플라자의 경우 전국에 6곳이 있다. 이곳은 모두 전문 기관이 운영을 맡고 있다. 은평구는 호서대, 마포구는 서강대, 수원시는 중앙대 등이다. 각 기관이 전문 노하우를 가진 인력을 파견하고, 동시에 변호사, 세무사, 성공 CEO, 창업 관련 박사급 인력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 100명 이상을 자문단으로 꾸려 시니어들의 창업을 돕고 있다. 이태원 중소기업청 시니어창업팀장은 “은평구 시니어비즈플라자의 경우 매일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게는 20여 명까지 시니어들이 방문하고 있다”며 “이곳에서는 창업과 재취업을 준비하는 시니어들에게 작은 업무공간도 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 외국의 시니어 창업 - 재취업 지원정책 ▼

우리나라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베이비부머(시니어)들에 대한 창업, 재취업 대책을 시작한 반면에 베이비부머의 은퇴 시기가 우리보다 빨랐던 선진국들은 다양한 지원 정책을 이미 펴고 있다.

일본은 생계형 창업자에게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한편으로 고학력, 전문 경험을 갖춘 시니어에게는 기업과 연계한 지원책을 사용하는 등 ‘투 트랙’ 전략이 특징이다. 정부의 ‘헬로워크’와 민간의 ‘시니어살롱’이 바로 그 두 축이다.

헬로워크는 일본의 후생노동성이 고용안정 기회 확보를 위해 만든 공공직업안정소의 애칭이다. 전국에 약 500개가 있으며 취직 상담, 직업 교육, 직업 소개, 고용보험 관련 업무 등 취업과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한국고용정보원과 취업지원센터를 합친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 헬로워크는 상대적으로 낮은 직무 능력을 가진 중·고령자들을 위해 단순한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곳으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시니어살롱’은 전문 경력을 가진 시니어를 대상으로 구인구직 및 직업 교육, 상담을 진행하는 민간 비즈니스 모델이다. 일본 도쿄대 사회복지학과 최선이 연구교수는 “일본에서 시니어살롱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이미 1993년부터 시행된 비즈니스 커리어 관리제도가 안착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무관리직을 중심으로 단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직업 능력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고 증명하는 제도인 비즈니스 커리어 관리제도를 통해 재취업도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

미국은 비영리단체(NPO)가 잘 정비돼 있어 경험과 지식이 많은 계층의 재취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NPO는 200만 개 정도 있는데 그중 절반은 의료, 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30% 정도는 각종 교육활동을, 나머지 20%는 기타 다양한 활동을 한다. 미국에서는 NPO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취업 인구에 포함시킨다. 미국 전체 취업 인구의 10% 가까이가 NPO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직업란에는 NPO라는 항목이 있을 정도. 스코어(SCORE)라는 비영리단체는 미국 중소기업청과 손잡고 퇴직 기업인들의 경험을 중소기업들에 전파하고 있다. 과거 ‘연금 생활자들의 천국’이라 불리던 영국은 이제 ‘연금 대신 일자리’로 국가 정책의 기조 전환이 뚜렷하다. 영국은 2006년 법으로 정년을 65세로 연장했고, 은퇴자 재취업 시스템도 가동했다. 특히 창업 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기관인 ‘엔터프라이즈 UK’는 ‘세계에서 가장 창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니어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기업가 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해 창업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다. 또 시니어 세대에 대한 지원을 사회복지 관점이 아닌 국가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도 시도하고 있다. 경험 많은 우수한 인재를 적은 비용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