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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죽은 여인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었다

입력 | 2011-04-08 14:28:15

강원경찰청 광역수사대, 캄보디아 C씨 사망 1년 만에 남편 강씨 구속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시집온 C씨가 사망한 춘천시 모 아파트 현장.

지난해 3월 18일 밤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의 한 아파트 안방에서 불이나 한국으로 시집 온 캄보디아 여성 C씨(당시 25)가 숨졌다. 119 소방대원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내부에 산소가 부족해 불길이 다 잡힌 상태였다. C씨는 옷을 입지 않은 채 엎드린 자세로 숨져 있었다. 경찰은 남편 강씨(45)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불구속 입건 상태에서 조사했다. 하지만 강씨는 그해 8월 풀려났다. 경찰은 현장 감식 결과 방화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도 C씨의 사인을 화재로 인한 질식사로 판단했다. C씨 몸에서 수면제가 나왔는데, 강씨는 “C씨가 평소 수면제를 복용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강원지방경찰청 수사과 광역수사대는 결혼 이민자 여성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수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강씨가 아내 명의로 거액의 사망보험에 가입한 사실도 경찰의 의심을 샀다. 결국 C씨가 숨진 지 딱 1년 된 올 3월 18일, 경찰은 보험금을 노려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불을 질러 살해한 혐의로 강씨를 구속했다.

4개월간 생명보험 집중 가입

이 부부는 2008년 3월 2일 캄보디아에서 결혼했다. 결혼에 두 번 실패한 강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결혼중매업자 K씨의 주선으로 캄보디아에 갔다. K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예쁜 여성을 찾는 다른 남성과 달리 강씨는 여성의 외모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강씨가 함께 살 배우자를 찾으러 간 것이 아니라 보험금 사기를 염두에 두고 캄보디아에 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였던 강씨는 가벼운 뇌경색으로 보험금을 받아 생활했다. 2007년 11월 19일부터 24일까지 4개 손해보험사에 건강 관련 보험을 집중 가입한 뒤 나흘 만에 강원도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강씨는 병원 생활을 반복하면서 받은 돈으로 캄보디아에 갔다. C씨와 결혼한 뒤에는 2009년 9월부터 12월까지 6개 보험사에 아내 명의로 생명보험을 집중 가입했다. 사망보험금만 12억 원에 달했다.

일부 보험사는 사망보험금 초과를 이유로 강씨의 생명보험 가입을 거절하기도 했다. 한 보험회사 관계자는 “강씨는 굉장히 특이했다. 일정한 수입도 없으면서 자진 청약으로 고액 보험에 가입했다. 특히 건강과 관련 없는 사망보험에 집중 가입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강씨는 보험 사기지표에서 82점을 받았다. 사기지표는 피보험자의 보험계약 내용, 지급 사항 등을 종합해 산출하는데, 이는 보험금 사기 상습법에 해당하는 점수”라고 밝혔다.

강씨는 C씨에게도 보험금 사기에 동참할 것을 종용했다. C씨처럼 한국으로 시집온 캄보디아인 P씨는 “강씨는 나쁜 사람이었다. C씨에게 자전거를 사준 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자동차에 일부러 부딪쳐 보험금을 받아내라고 시켰다”고 말했다. 강씨의 보험금 욕심은 끝이 없었다. 강씨는 캄보디아 현지 경찰을 매수해 사망진단서를 뗀 다음 한국의 보험사에서 사망보험금을 타낼 계획까지 세웠지만, 현지 경찰이 거절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강씨는 인터넷에서 ‘무죄 독살’ ‘화재 사망사건’ ‘복어독’ 등을 검색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1월 15일에는 화재보험에도 가입했다. 평소 요리를 잘 하지 않던 강씨는 족발을 만들겠다며 가스레인지에 솥을 올려둔 채 집을 나가거나, 전기히터에 담요를 덮어두기도 했다.

C씨가 숨진 날, 강씨는 오후 5시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다가 배가 아프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성관계를 가졌다. 아내가 곧 잠이 들어 수원 친구 집에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집을 나와 다시 당구장으로 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집으로 돌아온 강씨가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불이 나도록 이불을 전기히터 옆에 밀착해 놓은 것으로 본다. 아내가 숨진 뒤에도 그는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K씨는 “사건 발생 며칠 뒤 강씨가 찾아와 죽은 C씨의 처제를 소개해달라고 말했다. 어이없어 거절하자 우즈베키스탄 아내라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서에 다녀온 뒤에는 나를 협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광역수사대는 정황 증거, 간접 증거는 충분히 확보했지만,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C씨와 강씨의 지인들도 강씨를 의심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경찰에 유리한 증언을 해 줄 C씨 가족마저 강씨가 돈으로 매수하자 어려운 형편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고 했다. 김동혁 광역수사대장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강씨를 놓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죽은 여성이 결혼 이민자라는 점도 경찰의 마음을 움직였다. 강력팀 김성호 반장은 “C씨는 젊은 나이에도 가족을 위해 말도 안 통하는 한국으로 시집왔다. 같은 한국인이 이민자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데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해서 수사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법정 공방 끝날 때까지 책임질 것”

강원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팀(왼쪽 네 번째 김동혁 대장).

수사는 다시 시작됐다. 화재 원인이 단순 부주의가 아닌 의도적 방화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했다. 이번 화재와 관련해 딱히 참고할 만한 연구가 없어 애를 먹었지만, 김 대장은 단순히 ‘이럴 것이다’라고 추정하기보다 객관적 데이터를 증거로 제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광역수사대는 금융감독원, 생명보험협회, 국과수, 소방방재청, 서울경찰청, 경원대 소방방방재학과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원대 소방방재학과 최돈묵 교수는 “범인인지 아닌지는 경찰에서 판단한다. 우리는 당시 사건 현장을 재현해 불이 어떻게 났는지를 시뮬레이션했다”고 밝혔다.

광역수사대는 이 시뮬레이션을 토대로 전기히터의 안전장치, 전기히터와 이불의 거리 등을 고려할 때 단순 부주의로 불이 날 수 없음을 입증했다. 이는 법원이 영장실질심사에서 경찰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군가가 고의로 일으킨 방화이고, 사건 발생 시간 전후로 남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음을 경찰이 밝혀낸 것. 보험금 사기는 명백한 살인 동기인 셈이다.

이 사건은 1995년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과 닮았다. 당시 외과의사인 남편은 치과의사인 아내와 한 살짜리 딸을 목 졸라 숨지게 한 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장장 8년에 걸친 법정 공방이 있었지만 남편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과 검찰은 지금도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본다. 구속된 강씨도 보험금 사기 혐의만 인정할 뿐, 방화 살인 혐의는 극구 부인하고 있다.

광역수사대는 C씨의 사망사건을 재수사하면서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 기록을 가져와 꼼꼼히 읽고 수사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살폈다. 김 대장은 “법정 공방이 끝날 때까지 사건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간접, 정황 증거만으로도 유죄 판결이 나기도 합니다. 갈수록 범죄 수법이 지능화하고 용의자가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방화를 저지르기도 하니까요.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날 때까지 부족한 증거는 끝까지 찾아낼 겁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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