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경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장
지난해 11월 발생한 구제역으로 지금까지 350여만 마리의 가축이 땅에 묻히고 피해 규모도 3조 원을 넘었다. 축산 농가들과 공무원들이 밤낮없이 방역작업을 했지만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몇몇 공무원은 과로로 목숨을 잃었고 일부 축산인은 애지중지 키운 가축을 묻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나라 축산업은 2009년 현재 연간 농업 총생산액 41조3643억 원의 약 40%에 이르는 16조4840억 원을 차지하고 있다. 농림업 생산액 기준 상위 10개 품목 중 돼지, 한우, 닭, 우유, 계란, 오리 등 6개 품목이 축산물이다. 이는 식량 안보와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해 축산업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선진국 중에서 축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가 있는가?
지난해 6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동물 복지형 축산물에 대해 소비자 5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62%가 농장동물 사육방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78%는 동물 복지형 축산물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했으며 그 이유로는 52%가 건강에 좋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동물 복지형 축산물에 대한 추가 가격 지불 의사를 묻는 질문에 이들은 우유의 경우 86.1%, 계란 135.8%, 닭고기 41.1%, 돼지고기 38%, 쇠고기는 35.5%를 더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건강한 축산물을 소비하려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축산 농가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좁은 농경지와 초지 면적 등 축산 선진국에 비해 친환경 축산물 생산을 위한 여건이 열악해 상대적으로 속도는 느릴 수 있다. 하지만 2005년 18농가에 불과했던 친환경 축산농가는 2006년 68농가, 2007년 763농가, 2008년 2904농가, 2009년 4441농가, 2010년 6265농가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줄탁동기((초+ㅐ,줄)啄同機)란 말이 있다. 어미 닭이 알을 품어 때가 되면 안에서 새끼가 껍질을 쪽쪽 빨아대는 짓을 줄((초+ㅐ,줄))이라 하고, 이에 조응하며 바깥에서 어미 닭이 껍데기를 톡톡 쪼는 행위를 탁(啄)이라고 한다. 줄탁이 같은 때에 이뤄져야 생명의 온전한 탄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줄탁동기란 말은 고사성어나 격언보다는 화두(話頭)에 가깝다. 선종불교의 대표적인 공안집(公案集)이라 할 수 있는 송(宋)대의 ‘벽암록(碧巖錄)’에 수록되면서 이후 깨침을 향한 수행자들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현실에선 종종 자신과 타인의 관계, 혹은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우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줄탁동기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
장원경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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