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이틀 후면 1개월째를 맞는다. 방사성 물질의 누출이 멈추지 않는 원전 사고와의 싸움은 지금도 긴장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물론 일본인도 불안해하고 있지만 방사능 확산에 대해 해외, 특히 이웃 한국에 불안을 주는 데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대지진 발생 직후부터 쏟아진 세계의 성원 중에서도 이웃 한국의 응원에 뜨거운 감동을 느끼고 있다. 한국 정부는 맨 먼저 구조대를 파견하고 지원물자도 많이 보냈다. 한류스타와 K-POP(한국 대중음악) 가수들은 앞다퉈 기부하거나 응원 메시지를 보냈고 일반시민의 성금도 밀려들었다.
인터넷에서는 ‘Pray for Japan(일본을 위한 기도)’이라는 키워드로 세계인의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한국의 존재가 단연 눈에 띈다. 서울 길거리에서 시민들이 도화지에 그려준 수많은 격려 메시지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시인 고은 씨가 한겨레신문에 보낸 격려의 시 ‘일본에의 예의’도 인터넷을 통해 큰 감동을 줬다. 한국민 여러분 정말로 고맙습니다.
매체, 거리, 인터넷서 건네준 감동
10년 전, 내가 워싱턴에 있을 때 경험한 9·11테러가 생각난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제트기의 충돌로 무너진 참극. 그때도 믿을 수 없는 TV 영상에 충격을 받은 수많은 세계인이 동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워싱턴에 있던 일본인들은 돈을 모아 신문광고를 냈다. ‘America, we are with you(미국, 우리는 당신과 함께 있어요)!’라는 타이틀이었다. 기부자의 이름도 모두 실은 이색적인 연대 메시지였다.
일본과 미국은 지금은 동맹관계에 있지만 당시 테러리스트의 기습을 두고 과거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이래 처음이었다거나 가미카제 특공대를 연상시킨다는 말도 들렸다. 그런 적대(敵對)의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이 메시지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는 미국인이 적지 않았다.
지금 K-POP 팬을 비롯한 젊은 일본인은 한국으로부터의 격려를 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깊은 감개를 가지는 것은 일찍이 식민지 지배라는 미안한 시대가 있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지금 대통령언론특별보좌관으로 있는 이동관 씨는 당시 동아일보 도쿄특파원이었다. 극심한 교통정체 속에서 만난 어느 고교생이 오토바이를 태워줘 가까스로 피해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부러 길을 돌아가면서까지 도움을 준 고교생은 “열심히 취재해 주세요”라며 이름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고 이 씨는 놀라움을 적었다. 이런 게 쌓이고 쌓여 지금의 일한 관계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16년. 하필이면 3월 말에 검정 결과가 발표된 일본 중학교과서에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에 대한 기술이 늘어나 한국의 분노를 사고, 모처럼의 지원과 감사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대지진 재해에 대한 지원은 계속할 것이라고 하는 한국의 방침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대항 조치로 섬 주변 해역에서 종합해양과학기지 건설에 착수한다는 소식에 불안해졌다.
독도 논의는 ‘급한 불’ 끈 뒤에
이 문제에 대해선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지만 그건 상황이 좀 가라앉으면 논하고자 한다. 우선 한국에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지금의 일본은 정말로 심각한 위기 속에서 불안과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다. 게다가 원전 처리는 세계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진행 상황을 지켜보는 중대한 국제 문제다. 이런 때 일본과 한국이 섬을 둘러싼 다툼을 벌인다면 큰 화재가 발생해 불 끄는 데 정신이 없는 집에서 이웃과 야단스럽게 경계 다툼을 벌이는 것과 다름없지 않겠는가.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 대목에서 “우선 불부터 확실히 끄고 난 다음에”라며 점잖게 마음을 쓴다면 한국의 성숙도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어떡하다 보니 마치 대단한 주제를 다룬 것 같지만 오늘은 무엇보다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참사에 휩쓸린 일본에 대한 뜨거운 응원을 계기로 일본과 한국의 새로운 100년이 시작된다면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