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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서울 중심 사회와 ‘달빛 동맹’

입력 | 2011-04-10 20:00:00


황호택 논설실장

지방도시에는 특별시민과 보통시민의 구분이 있다. 서울 강남에 집을 한 채 사두고 자녀를 서울에 유학시키는 주민은 특별시민이다. 지방도시에 모든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주민은 보통시민이다. 지방의 특별시민은 금요일 저녁 서울에 올라와 처자와 함께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이른 아침 고속버스나 KTX에 몸을 싣고 사업장으로 내려간다.

서울에 권력 금력 일자리 교육 문화가 집중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날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되자 MB 정부를 향한 영남 지방의 여론은 악화 일로다. 영남권의 한 기관장은 “개인적으로 한국은 허브공항 하나로 충분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매년 인구가 줄어들고 공장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공동화(空洞化) 불안심리가 팽배하던 터에 신공항 백지화를 계기로 폭발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보다 국토가 넓고 경제규모가 큰 독일도 허브공항이 하나다. 허브공항이 둘 이상인 나라는 미국 중국 브라질 정도. KTX의 속도를 시속 350km로 높이면 전국이 90분 생활권에 진입한다. 다만 동남권에 허브공항은 아니더라도 1∼3시간 비행거리의 중국 일본의 도시들로 연결되는 중규모 국제공항 하나는 필요하다고 지역 경제인들은 말한다.

통계청의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영남과 호남을 합쳐 2010년에 전년보다 인구가 15만9500명이 감소했다. 매년 경북 김천시나 전남 광양시만 한 도시가 하나씩 사라진다는 얘기다. 수도권은 영호남에서 유입하는 인구에 자연증가 인구를 보태 2009년 43만6000명, 2010명 47만8000명이 늘었다. 영호남이 인구 감소세인 것과는 달리 충청권은 2010년에 전년보다 7만9000명이 증가했다.

범수도권 이남의 상대적 박탈감

수도권 전철이 온양과 춘천까지 닿으면서 충청과 강원 영서 지방까지 범수도권으로 편입되고 있다. 수도권 규제를 강화할수록 공장들이 경기도 도계(道界)를 넘어 충남북으로 내려간다. 요즘 천안 탕정 당진 등지에 가보면 지역경제의 활기를 확인할 수 있다. 세종시 건설과 과학비즈니스벨트의 배치를 보며 영호남의 박탈감은 상대적으로 커지는 것 같다.

대구경북연구원장을 지낸 홍철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은 “영호남 간 동서화합 차원을 넘어 수도권에서 소외된 지역끼리 힘을 합치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와 광주 사이에 여러 방면에서 교류가 활발합니다. 대구는 우리말 이름이 달구벌이고 광주는 빛고을이죠. 앞 글자를 따 ‘달빛 동맹’이라는 조어(造語)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남부권 연합이라고 할 수 있죠.”

수도권의 첨단업종 공장 신증설 규제를 완화해주는 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방출신 의원들의 반대에 부닥쳐 미뤄졌다. 수도권 규제 강화는 기업의 신규 투자와 일자리 창출만 막는 데 그칠 수 있다. 지방도시로 내려가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포함한 여러 인센티브가 있지만 첨단업종은 지방으로 내려가려고 하지 않는다. 한 기업인은 “지방으로 내려가겠다고 하면 기술인력들이 가족의 압력 때문에 퇴사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고 실정을 전했다.

수도권의 기능을 쪼개 지방에 나눠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수도권이 도쿄권 베이징권 상하이권 싱가포르권과 국제 경쟁에서 이겨야 국가경쟁력이 높아지고 서울에서 높아진 소득이 지방으로 흘러내려가는 스필오버도 가능해진다. 프랑스는 파리의 집중을 분산시키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꾸준히 추진한 결과 런던에 비해 파리의 국제경쟁력을 상대적으로 떨어뜨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프랑스는 근년에 전국을 6대 광역경제권으로 나눠 파리는 파리대로 발전시키면서 광역경제권의 균형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남부권 균형발전 큰 그림이 없다

노무현 정부 때 수도권의 공공기관을 지방에 나눠준 공기업 이전과 혁신도시 정책은 업무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지방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혁신도시가 구도심의 공동화를 부르고 땅값을 보상받은 지주들이 서울 강남에 투자해 강남 아파트값을 폭등시킨 부작용도 있었다. 노 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이 요란했기 때문인지 현 정부의 지방 살리기 노력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수도권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동시에 지방을 살려내는 일은 두 마리 토끼 잡기처럼 어려운 과제다. 남부권은 5000만 인구 중 36%인 1800만 명이 살고 있고, 남한 국토면적의 53%를 차지한다. 박양호 국토연구원 원장은 “지방을 이대로 놓아두면 노인들만 남은 농촌과 같은 공동화현상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지방 거점도시에 무엇보다 대기업의 일자리를 늘려주고 의료·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단순한 토목공사를 뛰어넘는 큰 그림의 설계와 범수도권의 배려가 필요하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