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1개월. 일본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 도쿄전력 등은 무능한 대응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지만, 선공후사(先公後私)에 철저한 일선 공무원의 직업정신과 시민정신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시민들이 지진해일(쓰나미) 잔해에서 발견해 당국에 신고한 현금만 수천만 엔. 지금도 매일 수백 건의 습득물 신고가 들어온다. 현금 주인이 3개월간 나타나지 않으면 발견한 사람이 가져갈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상당수 시민은 피해 복구에 써달라고 기부하겠다고 한다. 》
○ 시장, 밤늦게야 안치소 들러
3월 11일 오후 2시 40분. 일본 이와테(巖手) 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시의 도바 후토시(戶羽太·46) 시장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아. 고기 먹으러 가자.” 아내(38)는 뛸 듯이 기뻐했다. 시장 취임 1개월도 안 된 남편이 너무 바빠 그동안 가족끼리 오붓한 식사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6분 후 대지진이 덮쳤고 아내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도바 시장은 바로 아내를 찾아 나설 수가 없었다. 주민 2만3000여 명의 10%나 되는 2300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상황에서 ‘개인적인 일’을 앞세울 수 없었기 때문. 초등학생인 두 아들마저 친척집에 맡긴 채 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된 한 학교 급식센터에서 먹고 자기를 계속했다. 보다 못한 큰아들(12)이 재해대책본부를 찾아와 ‘어머니를 찾아 달라’고 따로 요청했을 정도.
○ 주민 대피시키다 숨진 경찰
“아빠는 이제 아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고통도 없는 세상으로 갔으니 괜찮을 거야.”
아빠가 보고 싶어 우는 두 아이를 안고 아내는 이렇게 달랜다. 30대 후반의 남편은 3월 11일 이와테 현에서 최후까지 주민들의 피난을 돕다 쓰나미에 휩쓸렸다. 남편은 대지진 나흘 후 꿈에 그리던 형사과장으로 승진해 다른 지역으로 옮길 예정이었으나, 그 꿈을 ‘목숨을 건 마지막 대민봉사’와 맞바꿨다.
아사히신문이 소개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내는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소개했다.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없어질 수도 있어. 큰일이 터졌을 때, 가족의 얼굴이 눈에 밟혀 위험에 처한 시민을 도와주지 못하는 경찰이 되고 싶진 않아.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들을 부탁해.”
도쿄=윤종구 특파원 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