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말한 지 80여 일 만에 정유회사들이 휘발유와 경유 가격 ‘할인’을 발표했다. 그간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기름값을 인하하라고 정유업계에 누차 공개적으로 종용했다. “성의 표시라도 하라”고 ‘반(半)애걸’하다시피 했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정유회사들의 담합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반위협’도 했다. 결국 유가는 쥐꼬리만큼 내렸지만 주유소마다 할인조건이 달라 소비자의 불만이 크다. 대통령발(發) 유가 끌어내리기로 일부 장관의 충성심은 확인했으나 서민가계에는 별 도움이 안 됐다.
정부는 최근 급등한 개인서비스 및 가공식품 가격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채비다. 이번에도 업계 대표들을 불러 ‘지침’을 주겠지만 개인서비스료 인상 억제는 정유회사 같은 대기업을 압박하기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최근의 물가상승에는 수입가격 인상 등 대외변수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재정과 통화(通貨)의 확대 같은 국내 정책의 부정적 효과도 크게 작용했다. 정부가 “성장보다 물가안정에 경제운용의 최우선을 두겠다”고 정책 방향을 선회한 시점은 물가상승 기대심리가 팽배해진 뒤였다. 청와대와 내각 경제팀, 그리고 한국은행 등이 적절한 타이밍에 신호등을 바꾸지 못해 시장(市場)의 흐름을 돌려놓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3·22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을 내놓자 시장은 오히려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 대책의 핵심은 가계부채 안정을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부활하면서 취득세는 깎아주는 것이다. 하지만 세수(稅收) 감소를 우려한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발로 취득세율 인하가 불투명해졌다. 언제 시행될지 모르는 취득세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 잔금 지급을 늦추고 입주를 미루는 가구가 많아져 3월 서울의 아파트 거래는 2월의 절반도 안 됐고 4월 들어서는 더 줄었다. 정부가 정책을 소프트랜딩시킬 환경을 함께 만들지 못하면 정책은 결국 시장에서 거부당해 정부의 실패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지난 1년 반 동안 네 차례의 땜질식 전세 대책도 정책을 완결하는 능력의 부족을 보여준다.
정부는 국토개발의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되레 확산시켰다. 금리인상이나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실기(失機) 책임도 누군가는 져야 할 일이다. 정책 목표가 아무리 그럴싸해도 정교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해법을 찾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성과는 나지 않고 혼란을 부르기 십상인 것이 경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