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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대학 간다는 딸에 “어쩔라 그라냐” 앞에선 혼냈지만… 엄마는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입력 | 2011-04-11 03:00:00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의 어머니 박복례 씨를 만나다




전북 정읍시의 신경숙 씨 부모 집에는 2005년 열린 어머니 박복례 씨의 칠순잔치 기념사진이 걸려 있다. 6남매 중 넷째이자 큰딸인 신 씨가 부모님 뒤에서 있다. 신현·박복례 씨 제공

농사일이 바빴다. 자식은 6남매. 엄마는 모두 새벽밥을 지어 먹인 뒤 학교로 보냈다. 50마지기 논농사에 허리가 휘었지만 ‘자식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위로 아들 셋을 고등학교에 보내고 그 아래 넷째(첫째 딸)가 중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는 말했다. “너는 일을 도와라.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면 된다.” 하지만 딸은 “그렇게 꼭 말씀하셔야 되겠느냐”며 울먹였다.

결국 딸은 서울 큰오빠 집으로 올라가 낮에는 일을 하며 밤에는 야간고등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펑펑 울었다. 취직자리가 들어왔지만 딸은 “대학교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어쩔라고 그라냐”며 혼을 냈다. 딸은 “제가 벌어서 다니면 되잖아요”라고 소리쳤다. 어머니는 딸에게는 화를 냈지만 돌아서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소설의 한 장면 같은 이 얘기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 작가 신경숙 씨의 어머니 박복례 씨(76)가 9일 기자를 만나 들려준 작가의 실화다. 영문판 출간 엿새째인 10일 현재 소설은 인터넷서점 아마존 종합순위 30위권을 오르내리고 있다. 수많은 독자가 눈물을 훔치게 한 신 씨의 ‘진짜 엄마’ 이야기가 궁금해 전북 정읍시 과교동의 집을 찾았다.
▼ “딸을 부탁해” ▼

정읍 시내에서 차로 10여 분. 한적한 2차로 도로 옆에 10여 가구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동네 사람에게 신 씨 부모님 집을 묻자 “저기 지붕 파란 집”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준다. 좁은 골목을 돌아 대문이 열려있는 단층 개량 한옥으로 들어섰다. 마당에는 작은 목련나무가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백구 한 마리가 컹컹 짖었다. ‘헛간 옆에 개집이 있었다’는 소설 속 묘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어디서 오셨는가.” 느리게 계단을 내려오던 ‘엄마’ 박 씨는 약속도 없이 찾은 기자를 “집에 없으면 어쩌려고” 하며 맞았다.

한평생 농사일에 전념한 부부는 여섯 자녀를 알토란같이 키웠다. 거실에 나란히 걸린 대학 졸업 사진 중 왼쪽에서 네 번째가 신경숙 씨. 정읍=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에서는 5남매가 등장하지만 신 씨의 형제는 6남매. 거실 벽에는 6남매가 나란히 학사모를 쓴 졸업 사진이 훈장처럼 걸려 있었다. 소설 속 아버지는 바람피우고 속 썩이는 인물이지만 실제 신 씨의 아버지 신현 씨(79)는 가족을 건사하려고 한평생 농사일에 전념했다. 신 씨의 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 때, 저기(아내)가 열일곱 살 때 결혼했다. 걔(신경숙 씨)가 어릴 때 고생을 많이 했다”며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소설 속 어머니처럼 박 씨도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높았다. “내가 못 배운 게 한이 돼서 힘들어도 끝까지 자식들을 가르치고 싶었어.” 큰오빠가 서울서 고시 공부를 하다가 가족을 돌보기 위해 대기업에 취직한 것도 소설과 현실이 닮은꼴이었다. 그러나 치매를 앓는 소설 속 어머니와 달리 신 씨의 어머니는 정정했다. 그 얼굴에 언뜻 신 씨의 모습이 스쳤다. 신 씨는 2000년 한 기고에서 ‘사람들이 어머니하고 닮았다고 하면 버럭 화를 내셨다’고 회상했다. “내가 당신을 닮은 것이 싫은 게 아니라, 내가 당신처럼 살게 되는 것, 어머니는 그것이 싫으셔서 지레 화를 내셨지, 싶다.”

어린 시절 신 씨는 어떤 딸이었을까. “어렸을 때 글 쓰고 상도 받고 했는데 이렇게 될지는 몰랐지. 별로 말도 안 하던 얘가 어떻게 소설을 쓰고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며 어머니 박 씨는 웃었다. 신 씨의 회상에 의하면 그를 문학의 세계로 이끈 것은 피곤하던 시절 여공들을 위한 서울의 고등학교 야간학급이었다. 무단결석을 한 소녀에게 선생님은 반성문을 써오라고 했고, 대학노트 수십 페이지를 반성문으로 채운 그에게 선생님은 “너, 소설을 써보면 어떻겠니”라고 했다. 그 후 결석은 없었다.

미국에서도 소설의 반응이 좋다고 하자 어머니는 “그런가요”라면서 눈이 커졌다.

“갈 때는 전화 자주 한다더니 바쁜지 (전화가) 자주 안 온다. 얼마 전에는 전화로 ‘9시 뉴스에 나오니까 꼭 봐’ 하더라. 근데 뭐 휙 지나가 버리니.” 신 씨는 지난해 8월부터 시인 겸 문학평론가인 남편 남진우 명지대 교수와 함께 뉴욕 컬럼비아대 방문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전화에선 ‘엄마, 늙지 마, 늙지 마’ 하고 말하는데, 내가 뭐 팍 늙어버렸으니….”

5일 미국에서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의 영문판은 5일 출간 첫날 인터넷서점 아마존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00권에 진입한 데 이어 10일 종합순위 28위까지 올랐다. 국내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는 한글과 영문판이 각각 부문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의 소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 씨는 한 모임에서 “나는 평생 문자의 세계에서 살겠지만 작가인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한 일이 있다. 딸의 책을 읽을 수 없어 서운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어머니는 “그렇지”라고만 했다. ‘엄마를 부탁해’ 가운데 ‘고생하는 어머니’, ‘서울서 공부하는 큰오빠’ 등 얘기를 해주자 “그런 얘기도 나오냐”며 반가워했다.

딸이 유명해지면서 집을 찾아오는 독자들도 있다고 했다. “딸(신경숙)이 가방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하는데, 다 그냥 쌓아 둔다. 내가 멋을 부리지 못하는 사람이니.” 다만 몇 년 전까지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쌀을 사다 먹는 ‘호사’를 한다고 했다.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르는 딸이지만 어머니의 걱정은 여전했다. 성당에서도 늘 딸을 위해 기도를 한단다. “애가 좀 들어서라고 기도를 한다. (손주가) ‘엄마, 엄마’ 불러주면 얼마나 (딸이) 좋겠나.”

얘기는 한 시간 정도 이어졌다. 두 사람이 들려주는 얘기의 대부분은 ‘착한 딸, 마음 넓은 딸, 글 잘 쓰는 딸’ 신 씨에 대한 칭찬이었다. ‘서운한 것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혹 딸이 흉잡힐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떠나는 기자에게 “욕 봤스요. 가시면서 드시라”며 두유 음료 3병을 건넸다.

소설 속 어머니는 실종 상태지만, 정읍의 한 농가에서는 신 씨의 어머니가 딸과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정읍=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