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났다. 강의실은 영어와 한국어 대화가 섞여 소란스럽다. 주로 과제와 봄 날씨에 관한 이야기다. 한 친구가 툭 내던지듯 말했다. “아침에 뉴스 봤냐?” “응.” 대화는 단절됐다. 누구도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혼자 강의실을 빠져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벌써 네 번째다. 1월이었다. 대학 입학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믿을 수 없었다. 밖에서 볼 땐 진지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친한 친구들 사이에선 밝은 놈이었다. 그리고 2월. 개강은 했지만 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지난해엔 학점도 잘 받았다. 나는 사건을 계기로 비난의 표적이 된 ‘성적에 따른 수업료 부과제도’의 대상자도 아니었다. 쉽지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한 결과였다. 지금은 학점 따윈 관심 없다.
학교에는 학생들을 인터뷰하려는 기자가 많이 찾아왔다. 잊을 만하면 신문과 뉴스, 인터넷에 톱뉴스로 우리 학교 소식이 실렸다. 경쟁을 부추기는 학교의 개혁정책이 먼저 도마 위에 올랐다. 캠퍼스 안의 살벌한 경쟁이 우릴 숨 막히게 한다고 비난했다. 기자들이 “괜찮냐”고 물어 “괜찮다”고 답한 친구들의 인터뷰는 늘 편집됐다. 우린 말을 아끼고 있는데 밖에선 연일 부각시키려고 했다. 답답했다. 내상은 깊어졌다.
세상의 관심을 이해한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학교, 부족함 없어 보이는 학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학교 탓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많은 건 사실이다.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학점도 짠 편이다. 그리고 학점이 낮으면 학비를 내야 하는 학생과 학점이 높으면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학생으로 구분된다. 우리들에겐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친구들은 살면서 실패란 걸 별로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실패를 겪었을 때 딛고 일어나본 경험이 없는 친구도 있었다. 단 한 번도. 이들이 처음 맛본 패배감은 또래가 느끼는 스트레스의 몇 배였을지 모른다.
어떻게 하면 학교가 다시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이젠 아주 작은 일도 기폭제가 되어 여기저기서 불꽃처럼 일어나고 있다. 난 괜찮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 된다. 난 정말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