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논설위원
인도는 중국보다 13년 늦은 1991년 시장경제와 개방에 발을 내디뎠다. 2004년부터 7년간 총리를 맡아온 만모한 싱은 20년 전 나라시마 라오 내각의 재무장관으로 발탁돼 개혁의 불씨를 지폈다. ‘인도의 덩샤오핑’인 싱 총리의 결단에 힘입어 인도는 폐쇄적 사회주의 정책이 초래한 재정 악화, 빈곤층 증가, 기업 경쟁력 약화를 극복하고 세계 경제의 본류(本流)에 합류했다.
1970년대 중반 인도 델리대 라지 크리슈나 교수는 ‘힌두 성장속도’란 말을 만들었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3.5%를 밑도는 모국의 현실을 개탄하는 신조어(新造語)였다. 그러나 미국 경제분석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는 얼마 전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9%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보이는 인도가 10여 년 뒤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11∼2015년 인도의 연평균 성장률이 중국의 8%대를 웃도는 9∼10%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일당 독재와 언론 탄압이 일상화된 중국과 달리 인도는 정치적으로도 내로라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국제 합동조사단 보고서를 전폭 지지하는 성명을 내놓아 국제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과 인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고, 영토 및 역사 문제에서도 이해(利害)가 충돌하지 않는다.
중앙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면 일사불란하게 집행되는 중국과 대조적으로 인도는 ‘민주주의의 경제적 코스트’가 적지 않다. 포스코의 인도 제철소 투자계획이 지방정부와 일부 반발세력의 발목 잡기로 한동안 삐걱거린 사례처럼 지방정치의 입김도 강하고 공직자 부패도 뿌리 깊다. 그러나 인도의 개혁이 근본적으로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도 저널리스트 구차란 다스는 “인도는 결코 호랑이가 될 수 없지만 쿵쿵거리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코끼리”라며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지구력만은 틀림없다”고 자신했다.
최근 교역이 활발해졌지만 우리 수출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2.5%로 중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인도에 대한 직접투자 누계액은 27억 달러로 해외투자 총액의 1.2%에 불과하다. 한국과 인도는 경제적, 비경제적 측면에서 모두 전략적 중요성이 커진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한-인도 CEPA의 업그레이드와 비자 관련 규제 완화, 상대국에 대한 투자 확대 같은 다각적 교류와 협력을 통해 두 나라가 ‘더 좋은 친구’로 발전해 갔으면 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