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동아일보 DB
●성남시청 팀 해체…지난해 12월 30일부로 월급 끊겨
●이재명 시장 “난 인권변호사, 이런데 돈 못 쓴다”
●“참 쉽다. 참 일방적이야”…안현수 미니홈피에 자조적 글 남겨
“안현수 하면 쇼트트랙의 황제잖아요. 천하의 안현수가 무적 선수로 풀렸는데, 어느 팀에서도 안 데려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 2003-2007년 5년 연속 세계선수권 종합우승. 안현수(27, 글로벌엠에프지)의 화려한 경력이다. 하지만 그런 안현수가 ‘마음 편하게 운동하고 싶어서’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간다.
하지만 현재 안현수와 함께 훈련하고 있는 황익환 전 성남시청 감독에 따르면, 안현수는 어느 정도 러시아로 갈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황익환 감독 “그동안 악에 받쳐 국가대표 선발전 준비”
황 감독은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국가대표 선발전이 끝난 뒤에 정확한 거취를 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현수는 황 감독을 통해 ‘대회 이전까지는 언론과 접촉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안현수에게는 일본과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꾸준히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안현수는 2014년까지는 충분히 선수로 뛸 수 있다는 입장이며, 이를 위해서는 러시아가 가장 좋다고 판단했다는 게 황 감독의 말이다. 러시아 빙상연맹과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가 조율한 결과라고 했다.
안현수의 러시아행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소속팀인 성남시청 쇼트트랙 팀의 해체다.
재정악화로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을 선언한 성남시청은 지난해 12월 30일 부로 소속 15개 체육팀 중 하키, 펜싱, 육상 3종목을 제외한 모든 팀을 해체했다. 80여명의 선수와 감독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황 감독은 해체하던 날 이재명 시장이 한 말을 잊을 수 없다며 이 같이 전했다.
“'직장운동부 1명이면 가난한 아이 3명을 도울 수 있다, 나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라 이런 데 돈 못 쓴다'라고 하시더군요. 아무리 그 분이 운동을 모르시는 분이지만, 안현수 같은 선수를 잘라내서 뭘 얻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해외에서는 계속 연락이 오는데… 한국에서는 4개월 째 백수
성남시청을 나온 안현수가 갈 곳은 없었다. 국내 어느 팀도 ‘황제’ 안현수를 스카우트하지 않았다.
안현수는 황 감독과 함께 무소속으로 대회를 준비해왔다. 지난 2월 동계체전과 3월 쇼트트랙 종합선수권에는 ‘경기 일반’으로 출전했다. 안현수가 ‘경기 일반’으로 출전하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파 작은 스폰서를 얻은 것이 지금 소속팀으로 표기되는 글로벌엠에프지다.
황 감독이 보는 안현수의 몸 상태는 전성기의 90% 정도. 부상은 다 나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안현수를 다른 나라로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무 수입도 없이 미래가 불투명한 게 벌써 4개월입니다. 나이도 스물일곱인데, 안현수 같은 선수가 하루아침에 청년실업자가 된 거예요. 대회에서는 계속 성적을 내고, 해외에서는 계속 연락이 오는데…. 정 국내에서 더 이상 뛸 수 없다면 나를 불러주는 곳으로 가겠다는 거죠. 제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최근 황 감독은 실업자 수당을 신청했다. 그것이 그가 이끌고 있는 ‘전’ 성남시청 쇼트트랙 팀의 슬픈 현 주소다.
소식이 알려지자 안현수의 팬카페와 미니홈피, 관련 커뮤니티에는 당황한 팬들의 글이 넘치고 있다. 하지만 ‘떠나지 말라’는 내용보다는 ‘아쉽지만 이해한다.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다’, ‘올림픽 3관왕을 이렇게 보내야하다니’ 등의 반응이 대부분인 것이 눈에 띈다.
2월 26일, 안현수는 자신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이렇게 남겼다.
‘한 번이면 됐어. 한 마디면 충분했다고. (중략) 지금도 충분히 위태로워. 이러다가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참 쉽다. 참 일방적이야.’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