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부가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세금을 내지 않는 역외(域外) 탈세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외국은행들이 50만 달러(약 5억4500만 원) 이상 예치한 미국인 고객 정보를 미 국세청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내용의 지침을 마련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비밀계좌 천국’이었던 스위스계 은행 직원들로부터 고객 정보를 사들여 탈세와의 전쟁에 활용한다. 국경을 넘나드는 탈세 조사를 위한 각국 세무당국의 공조도 활발해졌다.
▷역외 탈세의 대표적 유형은 세법상 과세 의무가 없는 비(非)거주자나 외국 법인으로 위장한 뒤 소득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행위다. 수출입 과정에서 허위 계약서를 작성해 세금을 내지 않거나, 국내 거주자가 적법절차를 밟지 않고 해외 투자 명목으로 재산을 밀반출하는 일도 있다. 자본의 글로벌화, 디지털화로 국가 간 돈의 이동이 쉬워지면서 ‘탈세의 세계화’라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이런 ‘검은돈’을 양지로 끄집어내면 세수(稅收)가 늘어나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사는 선량한 납세자의 부담이 줄어든다.
▷국세청은 올 1분기에 41건의 역외 탈세를 적발해 4741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시도상선 권혁 회장은 소득 8000억 원을 탈루한 혐의로 종합소득세와 법인세 4101억 원을 추징당하고 검찰에 고발됐다. 국세청은 한국 국적의 권 회장이 국내에서 경영활동을 하면서도 해외 거주자 및 외국 법인으로 위장한 뒤 벌어들인 소득을 해외계좌로 빼돌려 전형적 역외 탈세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반면 시도상선 측은 “권 회장과 시도상선은 한국에 납세 의무가 없는 국내 비거주자 및 외국 법인으로 홍콩에 소득세를 냈다”며 국세청의 결정에 불복해 조세소송을 제기할 뜻을 비쳤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