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패션 꼼꼼히 연출··· 스타 결혼식도 지휘명품 대중화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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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연예인이 와야 미디어가 주목하기 때문에 이들을 연결해 줄 스타일리스트들의 영향력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어요. 패션업계에서는 ‘간택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타일리스트의 위상이 높아졌죠.”
(패션홍보대행사 A 씨)
배우 이영애의 절친으로 알려진 스타일리스트 마연희는 이영애와 함께 CF 광고에 나오기도 했다(위).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의 손길을 거친 여배우들은 패셔니스타로 거듭났다. 동아일보DB
국내에서 톱 스타일리스트로는 정윤기, 김성일, 한혜연, 마연희, 서은영 등이 꼽힌다. 이들 이름 석자 뒤에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패셔니스타들이 줄지어 나올 정도로 유라인(유재석 라인), 강라인(강호동 라인) 못지않은 스타 파워를 자랑한다.
국내 남자 스타일리스트 1호인 정윤기 인트렌드 대표는 장동건-고소영 커플 외에도 과감한 의상으로 항상 주목을 끄는 김혜수, 중년 여성들의 워너비로 꼽히는 김희애에게도 도움을 준다. 수애를 매번 완벽한 레드카펫 룩으로 변화시킨 것도 정 대표의 손길이다. 정우성, 권상우, 이정재 등 최고의 남자 패셔니스타들도 정 대표가 스타일을 맡고 있다.
김성일 스타일리스트는 미시 패션의 교과서라 불리는 김남주의 스타일을 완성시킨 주인공이다. 또 이미숙과는 벌써 십수 년째 함께 작업한 사이로 최근에는 CJ오쇼핑에서 의류 브랜드 ‘스타릿’을 함께 론칭했다. 손예진도 그의 오래된 스타.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부터 지난해 화제가 된 드라마 ‘개인의 취향’까지 그의 손길을 거쳤다. 최근 개봉한 ‘마이 블랙미니드레스’도 그가 스타일링을 맡았던 작품.
한혜연 스타일리스트도 화려한 연예계 인맥을 자랑한다. 연예계 대표 패셔니스타 이효리를 비롯해 김태희, 한효주, 차예련 등 국내 정상급 여자 연예인들과 호흡을 맞추며 실력을 과시했다. 올 2월 제6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당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임수정의 반전드레스도 그의 솜씨다.
한국판 ‘섹스 앤드 더 시티’
사실 스타일리스트가 이처럼 막강한 스타 파워를 등에 업을 수 있었던 것은 패션계와 미디어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패션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소란을 벗어나 스타일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패션이 창조를 하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조합하는 것으로 흘러갔던 것. 이즈음 스타일리스트도 기존의 창작물을 가지고 단순한 ‘혼합물’을 만드는 코디네이터가 아니라 완벽한 ‘화합물’을 제조해내는 ‘크리에이터’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프랑스 ‘보그’ 편집장이자 스타일리스트 카린 루아펠드가 디자이너 톰 포드와 만나 쓰러져가던 패션명가 구치를 완벽하게 부활시킨 사실은 21세기 패션계에서 스타일리스트의 현 위치를 보여준다. 김성일 스타일리스트는 “옷을 만드는 건 디자이너지만 스타일리스트는 ‘그 위에 미학적이고 사회적인 텍스트를 입히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스타일리스트들은 광고,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스타나 배우에게 옷을 입힐 뿐이지만 경제연구소에서 수억 원을 써가며 설문조사를 하고 분석해 발표하는 각종 트렌드 전망을 그냥 안다. 누구에게 무엇을 입히고 어떤 네트워킹을 활용하고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노출하면 대박이 될지 안다. 거의 본능처럼 보인다. 옷과 구두 더미로 가득 찬 혼돈의 옷장에서 필요한 옷을 귀신처럼 찾아내는 옷장 주인처럼 말이다. 이주하 코오롱패션산업연구원(FIK) 교수는 “지금 정상에 선 스타일리스트들은 패션을 뼛속 깊이 사랑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움직이는 광고판’이나 마찬가지인 고소영과 장동건 커플의 공항 패션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에 걸쳤던 모든 아이템이 화제가 될 정도로 고도의 이미지 전략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아무렇게나 걸친 듯하지만 빈티지한 데님 진 패션이 얼마나 기품 있고 스타일리시한지 보여줬다.
물론 스타일리스트의 유명도만큼이나 일부에서는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창조하는 대신 연예인 후광을 이용해 특정 럭셔리 브랜드들을 맹목적으로 홍보해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국내 의류회사 관계자는 “10여 년 전만 해도 명품 하면 샤넬, 구치밖에 모르는 국민이 대다수였다”며 “감각 있는 스타일리스트들이 명품을 대중화하는 동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진 디자이너 발굴에 기여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