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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와 연구용역 계약도 의약품 리베이트에 해당”

입력 | 2011-04-15 03:00:00

의사 ‘자격정지’ 항소심 패소… 의약계 전면조사에 영향 줄듯




서울시내 K 대학병원 과장으로 근무했던 의사 이모 씨(48)는 2005년 8월 한 제약사와 연구용역계약을 체결했다. 이 업체가 수입·판매하는 조영제를 환자들에게 투여한 뒤 부작용이 있는지 조사해 알려주는 ‘시판 후 조사(PMS)’ 형식의 계약이었다. 조영제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을 때 조직이나 혈관이 잘 보이도록 하는 의약품.

이 씨는 제약사로부터 연구용역비 명목으로 3000만 원을 받아 회식비와 학회지원비로 쓰거나 개인적인 용도로 썼다. 제약사 임원으로부터 골프접대도 세 차례 받았고 영업사원에게서 15만 원 상당의 굴비세트 선물도 받았다. 이 영업사원은 이 씨가 속해 있는 부서의 회식비 300만 원을 지원해 주기도 했고 단란주점 비용 100만 원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

검찰은 이 씨가 받은 연구용역비 등이 이 제약사의 조영제를 사용하는 대가로 받은 리베이트로 보고 수사한 뒤 2008년 8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이를 통보받은 보건복지부는 2009년 3월 이 씨의 의사면허자격을 한 달간 정지시켰다. 이에 이 씨는 “연구용역비는 직무와 관련된 금품이 아니며 회식지원비 등은 사교적 의례로 받은 것”이라며 소송을 냈고 1심 재판부는 이 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행정10부(부장판사 강민구)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이 씨에 대한 자격정지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PMS 계약을 근거로 금품을 받았더라도 연구용역 계약이 형식적이고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대가라면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최근 검찰과 경찰, 보건복지부 등 6개 기관이 합동으로 의약계의 리베이트 비리에 대한 전면 조사에 나선 것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어 “제약사로부터 의약품 사용의 대가로 금품을 받는 행위는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뿐 아니라 제약사가 제공한 금품이 의약품의 가격에 반영돼 결국 환자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이 씨의 행위는 위법성이 적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