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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코리아/인요한]자살, 한국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입력 | 2011-04-15 03:00:00


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

열 살도 되기 전의 일이다. 동네 어른들이 20대 초반의 동네 누나를 업고 우리 집으로 왔다. 동네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하면 곧잘 어머니를 찾아 도움을 청했다. 어른들 말이 정혼을 앞둔 남자가 파혼을 선언하자 누나가 농약을 마셨다고 했다. 누나는 계속 뭔가를 토해냈지만 점차 의식이 없어졌고, 결국 사망했다. 내가 기억하는 첫 자살이다.

어릴 때만 해도 한국에서 자살의 이유는 이 누나처럼 심각한 실연을 당했거나 “넋이라도 평생 따라다니겠다”는 복수 수단 정도였다. 삶을 비관하거나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일은 한국 문화에서 매우 낯설었다. 하지만 최근 KAIST 사례를 비롯해 한국에서 자살률이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있다.

1895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진외조부 유진 벨 목사는 한국인의 심성에 대해 ‘겉보기에 희망이 하나도 없는데도 늘 웃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고 일기에 썼다. 내가 아는 한국인의 모습도 그렇다.‘가는 길은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사람들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을 ‘희망의 전도사’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서 자살이 느는 이유는 첫째, 한국인을 둘러싼 환경이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어렸을 적 소달구지를 타고 다녔지만 지금은 제트기를 타고 고향에 간다.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은 이국적이고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 결과 주위 환경에 대한 친밀감과 유대가 약해지고 있다.

속도는 여유로운 시간을 잃게 했다. 농경사회와 달리 현대의 한국인들은 순간순간 결정을 해야만 한다. 결국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도 급하게 쫓기듯 결정을 내린다. 이런 가운데 갈등요소가 많아졌지만 해결할 방법은 더 좁아졌다. 대가족 안에서는 고민을 상담할 상대가 풍부했지만 지금은 혼자서 끙끙 앓는 일이 많다.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죽고 싶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첫째, 남들은 사실 당신에게 대단한 관심을 갖지 않으니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 즉, 체면 세우는 데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다. 둘째, 자기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 3일만 지나면 죽느냐 사느냐 했던 일이 아무것도 아니다. 셋째, 말기암 환자처럼 힘든 치료를 견디며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하는 사람을 보라. 목숨을 버리겠다니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나.

한국인들이 빨리 돌아가는 시계를 붙들때가 됐다. 마을 어귀 나무 그늘에 놓인 평상에서 일상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이웃과 교류하던 기억을 되살렸으면 한다. 쫓기는 삶과 전쟁을 벌여 각자의 시간을 만들어 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혹 삶에서 의미를 찾기 힘든 사람이 있는가.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해 보길 권한다. 어려운 이들을 보며 자신이 가진것에 고마움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사람은 노인을 찾고, 노인은 젊은이를 만나길 바란다. 서로 다른 시간과 경험 속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 혹은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휘파람을 불며 진료실에 나올 정도로 내 직업을 사랑한다. 많은 한국인에게 선망의 직업인 의사를 하고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매일 아픈 사람, 죽어가는 사람과 전투를 벌이는 일이 늘 우아하지는 않다. 의사를 한다고 모두 행복하지 않은 이유다. 의대생 가운데서도 적성을 고민하는 젊은이가 많다. 유수 대학을 나와 가수가 될 수도 있고, 장사를 할 수도 있다. 세상은 무한한 기회로 가득하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로 가지 않았다고 스스로 ‘루저’처럼 느끼는가. 당신은 오히려 ‘개척자’다.

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