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위원
80%가 넘는 대학진학률을 걱정하는 대통령을 생각하면 대학은 안 가야 옳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은 나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높이 살지 모른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든든학자금)으로 대학을 마치되, 대출금 상환보다 저출산 문제해결이 중요하므로 취업이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는 생기는 대로 낳을 생각이다.
기르는 걱정은 안 한다. 그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강제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했다. 다자녀 혜택으로 대학까지 보내려면 되도록 많이 낳아야 한다. 열심히 돈 벌어 애들에게 더 나은 삶을 마련해줄 꿈은 안 꿀 테다. 복지혜택을 놓치는 건 물론이고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퍼뜨려 공동체를 해칠 우려가 크다. 이처럼 나보다 사회를 앞세운 내가 남들만큼 잘살지 못한다면 그건 무조건 사회 책임이다.
내가 낸 혈세로 부패하는 ‘큰정부’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내가 꿈꾸는 인간형을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규정했다. ‘친서민 중도실용’과 ‘공정한 사회’를 표방한 정부가 이런 인간형을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의 서민정책특별위원회는 국민의 70%를 서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민이든 사회주의적 인간이든, 이들이 많은 사회에서 나와 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건 국가이지 내가 아니다. 혼자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하다간 공동체와 남에게 폐를 끼치므로 주의해야 한다.
신 교수는 “이런 사회에서 국민에게 필요한 덕목은 국가를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그래서 서민이 잘살고 나라가 잘된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하지만 선거판이 벌어질수록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판을 믿고 따라선 안 되는 이유가 명백해지고 있다.
첫째, 서민이 시민을 밀어내면서 시민의식 대신 관존민비(官尊民卑)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을 영역할 때 국민은 시티즌(시민)으로 쓴다. 시민사회는 신분적 구분이 없는 사회인 반면, 좌파가 쓰는 ‘민중’은 억압받는 피지배계급이고 정부가 쓰는 ‘서민’ 역시 보호의 대상이다.
둘째, 유능한 관이 서민들을 잘살게 해주면 차라리 괜찮겠다. 글로벌 위기를 기화로 공공개혁은 물 건너가고 정부 역할이 커지는 추세다. 공조직이 나눠줄 수 있는 이권과 특혜, 자원이 커질수록 부패는 커진다는 연구결과 및 실증사례는 너무나 많다. 탈세를 감독해야 할 국세청 최고위 간부들이 뇌물을 받고, 국민의 대표로 뽑힌 국회의원은 이익집단의 로비자금을 받아 청부입법을 했다. 재계와 결탁해 거대한 부패집단을 형성하는 정관계를 믿을 순 없다.
셋째, 부패한 관과 거지근성의 서민들로 선진국은커녕 지속가능한 나라살림도 불가능하다. 물론 정부는 2011년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5.1%인 435조5000억 원으로 결코 많은 수준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작년 10월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대로 금융성 기금과 준정부기관 및 공기업 부채에 정부의 대민간보증까지 포함하면 GDP 대비 130%나 된다. 재정회계를 ‘마사지’해 국내외에 발표하다 결국 작년 구제금융에 손 내민 그리스의 채무비율이 125%였다는 걸 떠올리면 소름이 돋을 판이다.
당신들을 위해 세금 바치기 싫다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서 큰 정부, 큰 세금에 반대하는 ‘티파티’가 세를 과시했다. 재정 파탄의 아일랜드에서 2월 정권이 뒤집어졌고 포르투갈 스페인에서도 교체가 예고되는 등 유럽에서도 티파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랍의 봄’도 독재자 패거리의 부패에 서민은 물론이고 군과 엘리트까지 등을 돌리는 바람에 가능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