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150주년 맞은 세계 과학기술의 산실, MIT 가보니…
14일(현지 시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매사추세츠공대(MIT) 본관 1층 로비에서 학생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오른쪽 현수막에 ‘MIT+150’이라고 쓰여 있다. 10일로 설립 150주년을 맞은MIT가 지난 150년간 세계 최첨단 과학기술 개발을 통해 미국과 인류에 기여했던 것처럼 앞으로 150년 동안에도 사회에 기여하며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뉴욕에서 4시간 가까이 자동차를 달려 MIT 캠퍼스에 가까워지자 가로등과 건물 외벽 등 도시 곳곳에 걸린 ‘MIT+150’이라고 적힌 현수막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MIT는 10일로 설립 150주년을 맞았다. 1861년 4월 10일 존 앤드루 당시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학교 용지 제공 등 주정부의 지원 내용이 담긴 ‘MIT 설립 헌장’에 서명했고 MIT는 이날을 설립일로 기념하고 있다. ‘MIT+150’은 설립 이후 150년간 세계 산업 발전을 이끌어온 선도자의 위치를 앞으로 또 다른 150년 동안에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모토다.
동아일보는 최근 벌어진 KAIST 사태를 계기로 MIT, 캘리포니아공대(칼텍) 등 KAIST의 벤치마킹 대상과 인도공대(IIT), 홍콩과기대(HKUST), 칭화(淸華)대 등 아시아권 경쟁 대학들의 경쟁력과 학생 관리 시스템을 집중 분석했다.
○ 한계 상황을 견뎌내는 학생들
MIT 학생들이 ‘헬 위크(지옥 주간) 시즌2’라고 부르는 두 번째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MIT에서는 학기당 두 번의 중간고사와 한 번의 기말고사를 치른다.
@@▼ 졸업 問 좁지만 ‘연구자 길’ 넓어… 경쟁 심해도 좌절은 없다 ▼
개강 후 한 달 보름 정도가 지나 치르는 첫 번째 중간고사를 ‘헬 위크 시즌1’, 이로부터 다시 한 달 후에 치르는 두 번째 중간고사를 ‘헬 위크 시즌2’라고 부른다. 물리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윤지원 씨는 “공부량이 워낙 많아 MIT 학생들은 잠을 줄이는 습관을 들이려고 애쓴다”며 “특히 연구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밤을 새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해승 MIT 전기·컴퓨터공학과 석좌교수는 “언젠가 공부에 허덕이는 학생들이 딱해 숙제를 적게 내주고 강의 내용을 조금 쉽게 했더니 학생들이 오히려 항의를 하더라”며 “엄청난 공부량은 학생들 스스로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MIT의 저력은 사람
국내의 MIT 졸업생들은 학생들이 극한을 이길 만큼 강인함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MIT 학부 출신 한 교수는 “MIT 학생들은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강하다. 이는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와 관계가 있다. 미국은 어릴 때 운동을 하지만 한국은 어려서부터 공부만 강조한다. 고교 때까지 교육과정이 느슨한 미국은 명문대를 들어갈 때 ‘공부하자’는 마음을 갖지만 한국은 그 반대”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우수한 학생들이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인 교수들의 수업을 듣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도 경쟁력의 원천이다. 학부와 대학원을 포함해 MIT에는 1463명의 교수가 9949명의 학생을 가르친다(2009년 기준). 교수 1인당 학생 비율이 6.8 대 1 수준이다. MIT 교수나 졸업생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만 76명이다. MIT 출신 한 교수는 “우수한 교수가 있어 뛰어난 학생이 모이고, 이 학생들이 학부와 대학원에서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내기 때문에 또 세계적인 교수가 부임하는 연구의 선순환 고리에 들어선 것이 최대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 치열한 경쟁 속 학생 선택권도 존중
MIT 학습량의 상징 ‘소방호스’ MIT ‘32번 건물’ 1층에 설치된 소화전과 소방호스. ‘MIT에서 공부하는 것은 소방호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해서 소방호스는 MIT의 상징물이 됐다. MIT 학생들은 엄청난 학습량을 소화해야 한다. 케임브리지=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MIT는 전체 학점이 B를 넘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지만 학점 자체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MIT의 한 동문은 “의대, 법대 진학을 위해서는 높은 학점이 필요하지만 대학원 등의 연구자를 지망하는 사람은 적정 학점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에 몰두한다”고 말했다. 대학원 진학을 원하는 학생은 학부 시절 교수를 찾아서 연구를 제안하고 이들로부터 추천서를 받으면서 연구자로 성장하게 된다. MIT 출신 한 교수는 “학부생들이 하고 싶은 연구가 있으면 ‘학부 연구 프로그램(URP)’ 제도를 이용해 학교 측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MIT기업가정신센터의 네반 하누마라 박사는 “MIT 졸업생들이 창업한 기업들의 매출을 모두 합치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7위 규모가 된다”며 “창업을 장려하는 학교 문화는 창업에 관심 있는 우수한 인재들을 불러모으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youtae@donga.com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글·사진: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 주)=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 세심한 스트레스 관리
첫 학기는 A·B·C 없이 ‘통과 여부’만 평가
MIT에서도 강도 높은 학업은 학생들에게 큰 스트레스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학생들의 자살이 적지 않았다. 보스턴글로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90∼2001년 MIT는 학생 10만 명당 10.2명이 자살해 △하버드대 7.4명 △존스홉킨스대 7.0명 △코넬대 5.7명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특히 MIT 학부생만 놓고 보면 이 수치는 20.6명이나 됐다.
MIT가 2001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4%가 정신적 압박감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대학은 이후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제도를 보완해 왔다.
MIT에서 만난 화학과 3학년 이상현 씨(23), 경영학과 3학년 임수현 씨(22·여), 물리학과 2학년 윤지원 씨(21) 등 학부생들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엄청난 양의 공부를 시키면서도 고무줄을 잡아당겼다 놓았다 하듯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조절해 준다”고 입을 모았다.
MIT는 우선 학교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1학년 첫 학기에는 A, B, C 등 구체적 학점을 매기지 않고 ‘패스(Pass)’와 ‘논패스(Non-Pass)’만 준다. 강의를 들었는데 시험점수가 부족하거나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은 학생에게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나중에 재수강을 하면 된다. 첫 학기부터 학점이 낮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너무 과중하게 학업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한 학기에 최대 4과목까지만 수강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학생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카운슬링 제도도 강화했다. 학교 측은 학생지원서비스(Student Support Service·학생들은 이를 ‘S큐브’라고 부름) 제도를 도입했다. S큐브에 가면 전문 카운슬러들이 어떤 고민이든지 학생들의 편에서 얘기를 들어준다. 윤 씨는 “친하게 지내는 카운슬러가 있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만난다”며 “몸이 아파 시험을 미루거나 강의를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는데 카운슬러를 찾아가 상담했더니 모든 교수들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줬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학부생들이 지내는 기숙사 건물의 각 층에 멘터 역할을 하는 대학원생을 한 명씩 배치해 학부생들의 형이나 언니처럼 지내며 상담을 해주도록 한다. 학생들이 긴장을 풀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 정도 금요일이나 월요일에는 아예 학교가 문을 닫는 ‘롱 위크엔드’ 제도도 있다. 방학 기간에는 학내 동아리가 개설하는 ‘데이트 예절’ ‘테이블 매너’ ‘차밍스쿨’ 같은 강좌들이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씨는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카운슬러를 찾아가 정신상담을 받으면 나약하다는 인상을 줄까 봐 창피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교수에게 과제물이나 시험을 연기해 달라고 얘기하기가 쉽지 않지만 여기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여러 제도 보완을 통해 MIT는 자살률을 크게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에 10년간 MIT를 다닌 한 연구원은 “내가 다니는 10년 동안 자살한 사람은 모두 3명이었다”고 말했다. 대전 대덕단지 안에 있는 KAIST와 달리 MIT는 도심에 위치해 학생들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기가 수월하다는 분석도 있다.
▼ “교수 자질-헌신이 MIT 경쟁력 원천” ▼
이해승 석좌교수 “교수 1명 뽑을 때 수십명 추천받아”
매사추세츠공대(MIT) 전기·컴퓨터공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해승 교수(56·사진)는 14일(현지 시간) 자신의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MIT의 경쟁력이 어디에서 나오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 교수는 “MIT의 교수들은 강의시간이든, 연구실에서 만나는 학생이든 자신이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 놓는다”며 “이런 교수들의 희생정신이 MIT를 이끄는 가장 큰 힘”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에 따르면 MIT의 교수들은 한 학기에 한 과목만 가르친다. 일주일에 강의시간은 4시간 정도. 나머지 시간은 연구에 집중한다. 연구중심대학인 만큼 교수들에게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주기 위한 것이다. 학생들도 강의 시간보다 연구실에서 더 많이 배운다.
교수의 자질을 유지하려는 MIT의 노력도 인상적이다. 각 과의 학과장과 부학과장, 교수들이 참여하는 교수채용위원회는 교수 1명을 충원하는 데 수십 명에게서 추천을 받는다. 여기에 공개모집 과정에서 수백 명이 지원을 한다. 서류심사, 인터뷰, 공개 강의, 세미나, 학과장 상담 등의 과정이 이어진다. 교수 1명을 채용하는 데 통상 7, 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이 교수는 버클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4년부터 MIT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지난해 석좌교수 자리에 올랐다.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