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박영균]세습 채용

입력 | 2011-04-19 03:00:00


현대자동차 노조가 회사의 신규 채용 때 직원 자녀를 우선적으로 선발하는 단체협약안을 마련했다. 노조 측 임금 및 단체협약안에는 ‘신규 채용 시 정년 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근속자 자녀에 대해 채용규정상 적합한 경우 우선 채용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가점 등 세부적인 사항은 별도로 정한다. 노조 대의원 대회 의결과 노사 합의를 거쳐야 시행될 수 있지만 장기근속 직원의 일자리는 대를 이어가며 세습하도록 해달라는 요구다.

▷기업의 노사 협약에 직원 자녀의 특례 채용 규정이 포함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구인난을 겪던 1970, 8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특채해주는 공기업이 적지 않았다. 당시 일부 은행에서도 직원 자녀를 특채하는 관행이 있었다. 지금도 기아자동차 GM대우자동차처럼 노조의 힘이 강한 회사에서는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규정을 두고 있다. SK에너지는 2005년 노조 측이 자녀 우선 채용을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단체협약 규정 속에 슬그머니 집어넣은 회사도 있다.

▷젊은 세대의 취직이 매우 힘든 시대다. 가장 효과적인 뇌물이 로비 대상자의 자녀를 취직시켜주는 일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청년 실업에 따른 부모들의 고민이 얼마나 크면 ‘자녀 취업’이라는 뇌물까지 등장할까. 이런 세태에 공개적인 ‘일자리 세습’은 사회적 비난을 견디기 어렵다. 그 대신 음성적으로 직원 자녀들을 특채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입사 시험 때 임직원 자녀들에게 가점을 주는 곳도 있다. 같은 실력이면 어렸을 때부터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애사심이 높은 장기근속 직원의 자녀들을 선호하는 움직임도 없지 않다.

▷기업의 지배구조와 마찬가지로 직원의 채용 방법에도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직원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뽑아준다면 기회 균등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회사의 경쟁력 차원에서도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더구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은 구직자들이 서로 취직을 원하는 직장이다. 우리 주변에는 취직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청년들이 많다. 그들에게도 취업의 기회가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