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정부의 압박에 국내 4개 정유사들이 철저한 준비도 없이(무계획), 무작정 다른 회사를 따라가다(무개념), 소비자 대신 주유소 배만 불렸다(무책임)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휘발유 25원, 경유 10원 인하 그쳐
SK에너지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정유 4사가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L당 100원씩 내리기 직전인 이달 6일 L당 1970.92원이던 일선 주유소 보통휘발유의 19일 현재 평균가격은 1945.93원이다. 불과 24.99원 내린데 그쳤다. 경유 가격의 인하폭은 더 작아 6일 1801.62원에서 19일 1791.66원으로 겨우 9.76원 내렸다.
정유사들이 휘발유와 경유 공급가를 내린 직후인 7일 "재고 물량이 많아 당장 기름 값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둘러대던 주유소 업자들의 변명이 무색한 상황이다. 당시 일선 주유소들은 "미리 비싼 값에 확보해놓은 재고 물량이 소진되려면 1~2주 정도 걸리기 때문에 지금 당장 가격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주장했으나 이미 충분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격 인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유소 업자만 탓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공급가가 낮아졌다고 판매가를 낮추는 양심적인 주유소는 어차피 많지 않다는 얘기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름값 인하와 같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정유사들의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우선 가장 먼저 기름값 인하조치를 발표한 SK에너지조차 충분한 준비도 없이 일단 '질렀다'. 2주 동안 신용카드 결제로는 할인받을 수 없고, OK캐시백에 적립하는 방식이다 보니 혼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하지만 SK에너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SK에너지의 발표에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한 나머지 3개 정유사들은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따라가기 바빴다. 같은 날 동시에 가격을 인하한다는 홍보효과를 위해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에 대한 고민 없이 무조건 주유소에 공급하는 기름값만 낮추기로 한 것이 문제였다.
이 같은 '무개념'으로 접근한 기름값 인하는 결국 소비자들에게는 별다른 혜택 없이 주유소 업자들의 배만 불렸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정유사들은 공급가를 이미 낮췄기 때문에 할 일은 다 했으며, 나머지는 주유소의 책임이라는 '무책임'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유류세 문제 적극적으로 고민할 때
정유사들의 무계획, 무개념, 무책임도 문제지만 무조건 기업부터 압박하는 정부의 태도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기름값 인하 TF팀'을 해체하기 전에 성과를 내려는 조급증 때문에 정부가 무리하게 정유사들을 눌렀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류세 인하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은 최근 6개월간 국제유가 상승으로 소비자들이 L당 30.37원의 유류세를 더 부담하게 됐다고 19일 밝혔다. 소시모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첫째 주 L당 934원이었던 세금이 국제유가 상승으로 올해 4월 둘째 주 964.37원으로 올랐다. 4월 둘째 주 주유소 판매가격이 평균 1944.7원인 것을 고려하면 유류세가 49.6%를 차지한 셈이다. 소시모는 "정부가 더 이상 세수(稅收) 증대를 고집하지 말고 관세 및 부가가치세 면제, 탄력세율 인하 등으로 세금 부담을 줄여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SK에너지는 최근 신용카드사와 카드시스템 구축을 끝내고 20일 0시부터 전국의 SK주유소를 이용하는 모든 신용카드 사용자를 대상으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L당 100원 할인해준다고 19일 밝혔다. 앞으로는 OK캐시백에 적립하지 않아도 되며, 사용하고 있던 신용카드로도 할인받을 수 있게 된다.
김기용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