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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새벽편지]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입력 | 2011-04-21 03:00:00


정호승 시인

일본 호류(法隆)사에는 절 앞에 소나무 숲길이 길게 형성돼 있다. 대부분 오랜 시간의 나이테를 지닌 건강하고 잘 생긴 소나무들로 보는 것만으로도 청정한 느낌이 든다. 호류사 안마당에도 윗부분이 뚝 잘린, 수령 몇백 년은 된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 그 기품이 여간 예사롭지 않다. 내가 한참 동안 그 소나무를 쳐다보고 있자 일행 한 분이 호류사는 천년 된 소나무로 지었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이 절을 1400여 년 동안이나 대대로 지켜온 ‘궁목수’ 가문이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천년 이상 갈 수 있는 절이나 궁궐을 짓는 목수를 궁목수라고 하는데, 니시오카 가문이 바로 그런 가문이라고 한다.

이 가문에서는 “천년 이상 갈 수 있는 건물을 지으려면 천년 된 노송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나무로 건물을 짓는다면 모름지기 천년은 갈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궁목수로서 그 나무에게 면목이 서는 일이다”라고 후손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이는 나무의 두 가지 생명, 즉 자연적 생명으로서의 수령과 목재로 사용된 뒤부터의 생명 연수가 같다는 뜻이다. 나무의 나이를 통해 그 나무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뎌낼 수 있을까를 파악한 것이다. 그러니까 견딤의 기간이 쓰임의 기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천년을 견딘 나무니까 천년의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다.

천년 노송의 향기 품은 천년 사찰

나는 이 가문의 가르침이 시라는 집을 짓는 언어의 목수인 내게도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좋은 시의 집을 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과 사물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체험이라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오랜 세월 동안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견뎌온 나무라야 한다. 만일 그런 나무가 없다면 단 한 줄의 시도 쓸 수 없게 된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견딤의 힘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는 20대 초 군 복무할 때다. 1970년 2월, 신병훈련을 마치고 배치 받은 공병부대로 가자 일주일 뒤 제대한다는 한 병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어이, 정 이병, 넌 언제 제대하나?”

“네! 73년 초입니다!”

나는 병장의 질문에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하하, 73년? 그때까지 언제 기다려, 잘해 봐, 응?” 하고 내 어깨를 툭 쳤다. 주위에 있던 다른 병장들도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때 그 얼마나 아프고 견뎌야 할 세월이 아득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군 복무기간이 약 22개월이지만 그때만 해도 36개월이었다. 제대하려면 꼬박 3년을 참고 견뎌야 했다. 그래서 군모에 ‘세월아, 구보로!’라고 쓴 병사가 있는가 하면, ‘백인(百忍)’이라고 쓴 이도 있었다. 나는 모자 안쪽 잘 안 보이는 곳에 ‘참을 인(忍)’자 세 개를 썼다. 한 해가 지나면 한 자를, 또 한 해가 지나면 또 한 자를 지웠다. 그러나 글자 한 자를 지우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구나 견딘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견디고 견디다가 구부러지고 뒤틀어진 나무처럼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궁목수 가문에서는 그런 나무도 적재적소에 사용했다고 한다. 심하게 구부러지고 뒤틀린 나무라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고 그 나무의 성질을 잘 이용해 알맞은 용처에 썼다고 한다. 심지어 남쪽 벽에 쓸 나무는 산의 남쪽에서 자란 나무를 쓰고, 서쪽 벽에 쓸 나무는 산의 서쪽에서 자란 나무를 썼다고 한다.

그렇다. 내가 만일 똑바로 자라지 못하고 뒤틀린 나무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쓰일 데가 있다. “나 같은 놈이 어디 쓰일 데가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 궁목수 가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용무늬가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통가구 전주장(全州欌)만 해도 용목이라는 나무를 사용한다. 그런데 그런 나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병 때문에 몸의 일부가 옹이 지고 뒤틀린 나무가 그렇게 용무늬로 나타난 것이다. 목공예 소목장(小木匠)들은 구하기도 어렵고 부르는 게 값인 그런 나무의 무늬를 최고로 친다.

지금 나의 고통과 상처도 그런 용목이 되기 위한 것이다. 가장 잘 견디는 것이 가장 잘 쓰이는 것이므로 용목처럼 견딤으로써 인생의 아름다운 무늬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통이라도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는 인내의 힘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참기 힘든 고통도 미래의 보약

니시오카 궁목수 가문에서는 천년 노송으로 집을 짓고 나면 언젠가는 후대에서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다시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천년을 내다보며 집을 짓고 천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은 것이다. 지금도 호류사를 지은 목재의 일부를 대패질하면 천년 된 노송의 향긋한 솔 내가 난다고 한다. 견딤이 낳은 쓰임의 향기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우리 젊은이들한테도 그런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자살이 국가적 질병이 된 이 시대에 젊은 청년들마저 견딜 수 없다고 자살해 버린다면 언제 어디에 누가 쓰일 수 있을 것인가. 견딤은 미래의 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내게 견딤이 있어야 귀하게 쓰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