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1962년 혁명 동지였던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아바나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평소 골프를 ‘부자들의 운동’이라고 비난했던 이들이 골프 회동을 한 것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우호적 신호를 보내기 위한 의도였다. 카스트로는 개인 서기에게 다음 날 신문 제목이 ‘카스트로, 케네디 대통령에게 친선 골프 제안’이 나오도록 주문했다. 서로 지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이들의 골프는 단순한 친선게임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릴 적 아르헨티나에서 골프 캐디를 했던 게바라가 이기자 쿠바의 골프는 된서리를 맞았다. 카스트로는 자신이 졌다는 게임 결과를 기사로 쓴 개인 서기를 해임하고, 아바나에 있던 골프장은 군사학교와 예술학교로 바꿔버렸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중남미에서 반미(反美)의 상징이다. 공개 석상에서 마이크를 한 번 잡으면 몇 시간 동안 미국을 비난하는 장광설로 유명했다. 미국엔 턱밑에 있는 카스트로 정권이 항상 눈엣가시였지만 중남미 좌파정권 지도자들에게 카스트로는 우상이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제2의 카스트로’로 불린다. 카스트로는 북한 정권 수립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낼 정도로 북한 정권과도 각별한 사이다.
▷카스트로 전 의장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는 1959년 형과 함께 바티스타 정권을 몰아낸 혁명 동지다. 형 피델이 장출혈 수술을 받으면서 라울은 2008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물려받았고 최근 당 제1서기로 공식 임명돼 형이 갖고 있던 모든 권력을 넘겨받았다. 형 피델이 동생 라울의 손을 들어주는 사진은 쿠바 권력의 형제 이양을 안팎으로 공표한 것이다.
▷라울은 사회주의에 개혁 개방 시장주의를 결합한 덩샤오핑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 라울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골프장 건설 계획도 발표했다. 그는 평의회 의장 취임 직후 “사회주의는 권리와 기회의 평등이지, 소득의 평등이 아니다”라고 폭탄 발언을 했다. 정치범 석방으로 인권을 강조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에도 발맞추고 있다. 그의 개혁이 형 통치 50년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쿠바의 형제간 권력 이양이 북한의 3대 세습보다는 한결 나아 보인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