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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눈물 알리는게 내 소임” 분쟁지 누비다가…

입력 | 2011-04-22 03:00:00

종군전문 사진기자 2명 카다피군 포격에 희생




팀 헤더링턴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민간인 학살을 세상에 알리고 리비아 내전에 국제사회의 개입을 이끌어낸 저명한 종군 사진기자 2명이 카다피군에 포위돼 고립 상태인 미스라타에서 20일 카다피군의 포격으로 숨졌다. 목숨 건 취재활동으로 리비아의 실상을 세계에 생생하게 전했던 이들은 종군기자로서의 사명을 가슴에 품고 눈을 감았다.

영국 사진기자 겸 영화감독 팀 헤더링턴 씨(40)와 게티이미지 소속의 미국인 기자 크리스 혼드로스 씨(41). 두 기자는 카다피군이 집중 공격을 펼치고 있는 미스라타 시내에서 취재 중 날아온 소화탄에 맞아 숨졌다.

잡지 배니티페어 소속으로 최근에 결혼한 헤더링턴 씨는 영국과 미국 국적을 동시에 가진 종군 전문기자. 그는 내전이 발발한 직후 리비아로 들어가 동부 반군의 사령부가 있는 벵가지부터 아즈다비야, 라스라누프 등 격전이 벌어지는 곳을 따라다니며 사진과 영상을 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벵가지에 있던 그는 국제구호단체가 미스라타에 고립된 외국인 근로자를 구출하기 위해 보낸 배를 타고 미스라타로 들어가 취재 중이었다. 그는 내전이 종료된 뒤 리비아 내전에서 목격한 인간과 갈등의 문제를 인터넷과 영화 등으로 제작하기 위한 멀티미디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크리스 혼드로스

그는 감독으로서도 명성이 높은 예술가였다. 아프가니스탄 동부 전선 코렌갈 계곡의 허름한 군기지에서 15개월간 고된 임무를 수행하는 미군 소대를 영상으로 담은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레스트레포’는 201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올해 오스카상 2개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옥스퍼드대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는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 내전을 계기로 카메라를 잡기 시작했는데 사망 전날 배니티페어 편집장에게 “리비아에서의 경험으로 흥미로운 기사를 쓸 수 있겠다”는 e메일을 보냈다. 또 19일 트위터에 “포위된 리비아 도시 미스라타에서. 카다피군의 무차별적인 포격.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의 흔적은 전혀 없다”는 글을 올렸다.

혼드로스 기자도 결혼을 앞두고 있던 터라 주위 사람들의 슬픔은 더욱 컸다. 그는 라이베리아 내전 등 10년 넘게 분쟁 지역을 취재하며 찍은 사진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종군 사진기자였다. 특히 그는 리비아 내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선을 골라 다니며 가급적 망원렌즈를 쓰지 않고 직접 현장에 접근해 생생한 순간을 포착해 왔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코소보 앙골라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등 대표적 분쟁지역에서 수많은 잡지의 표지 사진을 만들어냈다. 2006년엔 최고의 전쟁보도사진에 주어지는 로버트 카파 황금메달상을 받았다.

헤더링턴 씨 가족은 성명을 내고 “그를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며 영화 레스트레포와 놀라운 사진들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기자의 사망으로 리비아 사태 취재 중 숨진 언론인은 3월 벵가지에서 사망한 알자지라방송의 카메라 기자와 리비아 온라인 매체 알후라TV의 기자를 포함해 4명으로 늘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