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보내는 마지막 이삿짐을 날랐다
끝까지 할아버지의 곁을 지켰던 성모 마리아 상이 그의 ‘이삿짐’을 나르는 낯선 남자 2명을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4일 오전 10시 서울 노원구의 한 다세대주택 앞. 기자가 못 미더운지 ‘바이오해저드 특수청소’ 김석훈 사장(36)이 거듭 말했다.
혼자 살다 사망한 노인의 ‘집 정리’가 그날의 일거리. 이 회사는 숨진 뒤 오래 방치됐던 시신의 흔적과 냄새를 지우고 집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일을 한다. 고인의 유품을 정리해 가족에게 전달하거나 폐기 처분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
열쇠는 지방에 출장을 간 아들이 우편함에 놓아두었다. 몇 번이나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문을 열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시취(屍臭)에 구역질이 나왔다. 무더운 여름날 야외 음식물 쓰레기통에 코를 박고 있는 듯 괴로웠다. 1t 트럭 4대분의 짐이 49.6㎡(약 15평)의 공간에 가득 차 있었다.
“마음이 아프고 찜찜해서 그렇지, 이 일이 이삿짐 나르는 것이랑 뭐가 달라요?”
함께 식탁을 나르던 강 씨의 말처럼 일은 이삿짐 옮기기와 다를 바 없었다. 가구와 가전제품을 꺼내 트럭에 싣고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마대에 담았다. 아직은 쓸 만해 보이는 TV와 비디오, 오디오도 모두 버렸다. 배어 있는 냄새 때문이다. 유족이 업체에 일을 맡기는 이유도 주로 냄새 때문이다.
그렇지만 옆에서 “조심해요”라고 주의를 주는 주인도, 가족도 없었다. 짐을 다 뺀 후 시체 전용 소독약으로 살균을 하고, 탈취를 위한 파우더를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도 여느 이사와 달랐다. 그렇게 하면 냄새의 90%는 잡을 수 있다고 한다.
○ 성모상만 지켜본 죽음
안방에 들어서자 선반에 놓인 성모 마리아상이 눈에 들어왔다. 천주교 신자였던 할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거두던 순간 유일하게 임종한 주인공이다. 성북구청장에게 받은 감사패도 선반 한쪽을 지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숨졌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부패가 심해 부검을 하더라도 사인을 밝히기가 쉽지 않아 유족이 부검을 포기했다고 한다.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장롱 아래 속살을 드러낸 회색빛 바닥이 보였다. 옆에는 커터가 놓여 있었다.
김 사장에 따르면 자연사한 시신에서도 부패가 진행되면서 자연적으로 피가 터져 나오기도 한단다.
일본 최초의 유품정리 전문회사인 키퍼스의 요시다 다이치 대표이사는 자신의 책 ‘유품정리인은 보았다’에서 “유품정리란 일은 어떤 의미로는 저세상으로 가버린 사람들이 천국으로 이사 가는 것을 돕는 일”이라고 썼다. 할아버지는 마리아가 밝혀주는 길을 따라 천국으로 가셨을 것이다. 그러나 장롱 밑으로 스며들어, 장롱과 장판을 접착제처럼 붙여 버린 핏자국이 그의 발을 자꾸 붙잡진 않았을지 걱정됐다. 강 씨와 함께 장롱을 들어올리자 바닥에 깔린 장판이 따라 올라왔다.
○ 손자의 그림 ‘주제-외할아버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저희 사무실에 상담하러 온 아들이 돌아가신 지 한 달 만에 발견했다고 했어요.”
산업폐기물처리장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김 사장이 말해 줬다. 문득 시골에 계신 기자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떠올랐다. 안방 시계 옆에 걸린 기자의 유치원 졸업사진도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린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했다.
망자도 한 아이의 할아버지였다. 비닐 팩에 담아둔 찬거리를 꺼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손자가 그려준 그림을 보았을 것이다. 그림을 그려준 손자의 따뜻한 마음에 웃음 지었을까,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손자에 대한 그리움에 한숨을 내쉬었을까.
○ 산업폐기물처리장으로 간 가족사진
베란다 앞 천장까지 가득 쌓인 박스들 사이로 신문지로 곱게 싸인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신문지를 뜯어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함께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앉은 뒤편에 남자 3명과 여자 3명이 서 있었다. 아무렇게나 뜯어냈던 손이 민망해졌다.
“이것도 버려요? 가족사진인데….”
“예. 별다른 말씀 없으셨어요.”
테이프를 가져와 액자를 다시 싼 후 트럭으로 향했다. 자녀들이 카니발 자동차로 4번을 오가며 중요한 물건을 챙겨갔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꽁꽁 숨겨 놓은 탓인지 이 사진은 찾지 못했나 보다.
액자를 내려놓는데 골목길을 내려오던 동네 할머니가 말을 건넸다. “아이고, 젊은이들이 고생이 많네. 그런데 할아버지 혼자 살았던 집에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요? 나이 들면 뭐든지 버려야 된다니까. 그런데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면서도 그게 마음대로 안 돼.”
기자의 다른 손에 들린 마대 자루 위로는 ‘트로트 가요집’이라고 적힌 카세트테이프가 나와 있었다. 할아버지가 신문지로 곱게 싸두기만 했던 가족사진은 그가 즐겨 듣던 트로트 테이프와 함께 산업폐기물처리장에 버려졌다.
오후 6시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이불을 실었다. 투명 비닐에 싸인 그것들을 안방에서 뜯어낸 장판으로 다시 한 번 감았다.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시취가 다시 한 번 코를 찔렀다.
“어차피 전염성 폐기물로 버릴 건데 굳이 싸야 돼요?”
“혹시 다른 사람들이 보면 싫어하잖아요. 이런 것은 회사로 가져가 작게 잘라야 전염성 폐기물 수거하는 박스에 넣을 수 있어요.”
문을 잠그고 열쇠를 다시 우편함에 넣었다. 2시간여 전에 트럭 옆을 스쳐 지나갔던 집배원이 꽂아 놓은 하얀 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해서 봉투를 꺼내 이름을 확인했다. ‘받는 이’에 적힌 이름은 성만 같을 뿐 할아버지의 것이 아니었다. 다시 제자리에 꽂아놓고 차에 올라탔다.
아침에 보았던 청명한 하늘이 주는 상쾌함은 온데간데없고, 간만에 눌러보는 기자의 할아버지 전화번호 한자리 한자리가 유난히 무거웠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