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프랭크 푸레디 지음·박형신 박형진 옮김/368쪽·1만9000원·이학사
현대인들이 갖는 공포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가뭄이나 홍수, 핵 등 실제 위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위험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즉 ‘상상된 공포’에서 공포를 느낀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동아일보DB
공포와 위험에 민감한 우리는 실재하는 것보다 허구에 더 불안해하고 두려움에 떤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 곧 일상의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공포는 저자 푸레디의 말대로 ‘삶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공포를 매개로 사회적 삶을 재인식하는 문화적 관점을 갖게 되었다. 바로 ‘공포문화’이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공포가 발생하는 사회적 메커니즘과 그것이 현실세계, 특히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사례를 들어 흥미롭게 전개해 나간다. 우리가 첨단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과거에 비해 실제로는 더 안전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왜 더 공포에 휩싸이고 위험에 민감한지 저자는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책에 따르면 과학은 공포에 대한 인식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증폭시킨다. 자연에서 오는 공포를 해소해준 과학기술이 오히려 공포감을 가중시킨다니 무슨 말인가. 과학은 공포의 제거를 목적으로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공포를 ‘발견’하기도 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정수남 고려대 강사 사회학 박사
이러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전문가 시스템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전문가에게 의존할수록 안심과 확신보다는 공포를 더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역설적이게도 전문가는 위험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공포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생산한다. 오늘날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위험관리기관, 예를 들어 컨설팅업체, 전문상담기관 등은 우리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푸레디는 공동체의 붕괴, 노동시장의 유연화 그리고 국가의 책임 축소에서 발생하는 공포의 개인화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에티켓’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고립된 개인들의 경험에 기초한 도덕으로서 ‘신중, 자제, 책임 있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타인의 위험을 외면하고 책임 회피를 당연시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문화는 인간을 탐구와 실험정신 그리고 도전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며, 사회 참여에 수동적이고 정치에 무관심하도록 이끈다.
저자는 이런 공포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변화를 운명에 맡기기보다는 위험에 맞서며, 공포에 대한 자기성찰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위험과 공포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이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사람은 ‘해답’이지 ‘문제’가 아니다. 공포문화의 근원이 불신에 있듯이, 공포문화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가장 먼저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공감을 통해 공포문화로부터 ‘함께’ 벗어나길 저자는 희망한다.
정수남 고려대 강사 사회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