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서울 가셨는데요”… 오송은 ‘출장중’

입력 | 2011-04-23 03:00:00

■ 입주 6개월 오송행정타운, 식약청 등 6개 기관 이전
주요 업무 아직도 서울서… 1주일에 2, 3일 자리 비워




꼬리 문 통근버스 21일 오후 6시 반경 충북 청원군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 내에 통근버스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서울에서 이전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직원의 3분의 1가량인 800여 명은 통근버스나 자가용, 고속철도(KTX)를 이용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청원=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그는 이번 주(18∼22일)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울에서 업무를 보느라 충북 오송의 사무실을 비워야 했다. 충북 청원군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에 위치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일하는 김모 팀장의 이야기다. 출장이 예정된 경우도 있지만 갑자기 잡힌 회의나 업무로 부랴부랴 서울 출장을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10월 오송으로 이전했을 때는 서울에서 사람이 내려오기도 했지만 매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서울에서 회의가 많고 업무도 그쪽에서 이뤄져 일주일에 2, 3일은 사무실을 비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역경제 및 바이오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충북 청원군에 오송생명과학단지를 조성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식품의약품안전청 질병관리본부 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국립보건연구원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등 6개 기관의 직원 2384명(2010년 12월 말 기준)이 지난달 이전을 완료하고 오송 생활에 들어갔지만 업무는 아직도 서울에서 상당 부분 이뤄지고 있었다. 오송으로 이전한 기관의 직원들은 출퇴근이나 서울 출장을 오고가는 데 서너 시간을 허비면서 업무의 부담과 비효율성이 커졌고 교통, 편의시설, 생활에서도 큰 불편을 느끼고 있었다.

내년 4월부터 시작되는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9부 2처 2청 등이 청사를 옮기는 세종시 이전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오송행정타운은 세종시의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오송에 내려온 게 맞는지 헷갈려”

오송타운으로 이주한 기관의 직원들은 전혀 다른 업무환경에 힘들어하고 있다. 업무상 자주 만나야 할 대부분의 제약사나 병원 관계자들과 보건복지부가 서울에 있어 직원들이 출장을 가야 하는 일이 많은데 길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고속철도(KTX)를 타면 오송역에서 서울역까지는 43분이 걸리지만 이동시간이 추가로 소요되고, 도로로는 1시간 반∼2시간 걸려 행정력 낭비가 심각하다. 잦은 서울 출장 때문에 “오송에 내려온 건지 서울에 계속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직원도 적지 않다. 앞으로 세종시도 오송역을 이용하게 되는 만큼 비슷한 현상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오후 6시 반에 출발하는 통근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시에 ‘칼퇴근’하는 직원이 많아 서울에서처럼 야근이나 잔무 처리는 생각하지 못 한다. 상사들도 뻔히 사정을 알기 때문에 잔업을 요구하기가 어렵다. 예전 같으면 일주일이면 마무리될 업무가 기한을 훨씬 넘기는 경우도 많다.

목베개 들고 고단한 출퇴근 한 여직원이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목쿠션을 허리에 끼고 걸어가는 모습.

제약사 등 기업 관계자나 민원인들도 오송까지 내려와야 해 청에서는 되도록이면 아예 “내가 서울에 출장을 갔을 때 보자”고 하기도 한다. 식약청장도 회의나 행사가 많아 서울 양천구 목동의 서울지방청에 있는 날이 일주일에 두세 번은 된다.

직장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오후 6시 반에 출발하는 통근버스를 놓치면 어쩔 수 없이 비싼 KTX를 타고 집에 와야 하기 때문에 퇴근시간에 쫓기듯 산다. 당연히 저녁 회식처럼 화합을 다질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보니 팀워크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무실 분위기도 삭막해지고 직원들의 인간미도 떨어졌다.
▼ 직원 33% 하루 4시간씩 출퇴근… “못견디겠다” 이직 속출 ▼

세종시는 더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중앙부처의 과장급 이상은 국회 출입이 잦은데 과장 국장 장관은 국회에 있고 실무진은 세종시에 있는 이원화된 업무 시스템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 직원 33%는 여전히 수도권에서 출퇴근

20일 오전 7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공무원 40∼50명이 줄을 서 있다. 이들은 충북 청원군 오송행정타운으로 출퇴근하는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잔업을 위해 전날 들고 온 업무자료나 목쿠션 등이 든 쇼핑백을 들고 온 사람도 많았다. 차량 두 대가 연이어 승객을 태우고 출발하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승객들은 목쿠션을 대거나 안대를 착용하고 밀린 잠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도착 예정 시간은 1시간 40분 뒤인 8시 40분.

버스에서 만난 조혜영 식약청 보건연구관은 고교 2학년생을 둔 아이의 엄마.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와 맞벌이를 하는 남편 때문에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서울에서 오갈 수밖에 없다. 출장을 많이 다니는 조 씨는 “지난달 실제로 쓴 교통비 40여만 원 중 10여만 원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급여는 같은데 지출은 늘었다”며 “행정타운에서 청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비용은 청구할 수 없는 데다 행정타운을 지나는 버스가 몇 대 없어 택시를 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말 당직 때 서울과 오송을 오가는 비용이나 통근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정시에 퇴근하면서 집에 업무를 들고 가더라도 초과근무수당을 타지 못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짐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비슷한 시간 양재역 불광역 사당역 잠실역 영등포역 등 서울 주요 도심이나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용인시 죽전동 등 9개 노선에서는 총 14대의 통근버스가 움직인다. 이용하는 사람만 580여 명이다. 오송행정타운 전체 직원 2300여 명 중 3분의 1가량은 아직도 서울과 수도권에서 KTX를 이용하거나 통근버스로 출퇴근하고 있다. 대부분 가족이나 자녀교육 문제로 이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조은희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 연구원도 일주일에 3개 도시를 오간다. 집이 있는 부산과 자녀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는 서울, 직장이 있는 오송을 이틀씩 나눠 다니고 있다. 그는 “오송에 살 수 없는 상황이라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데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통근버스비는 월 5만 원으로 저렴한 편이지만 KTX 정기권은 33만 원이 넘고 KTX역까지 가는 버스나 택시비를 포함하면 이전 기관 직원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 기러기 가장 때문에 원룸촌 번성

“2500채 지었건만…” 불 꺼진 아파트 21일 날이 어두워지자 충북 청원군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 인근 아파트들은 ‘불 꺼진 아파트’로 변했다. 지난해에만 2500채에 가까운 새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대부분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것이어서 실거주자는 많지 않다. 청원=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오송타운으로 이사를 왔다고 해도 정상적인 가족은 많지 않다. 미혼을 제외하면 기러기생활을 하는 직원이 많기 때문이다. 상당수 직원은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원룸에 머무르거나 동료들과 함께 두세 명씩 아파트를 전세 내 살고 있다. 행정타운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주거단지에는 미혼 남녀와 기러기 직원들을 겨냥한 ‘원룸촌’도 형성돼 있다. 원룸촌은 단독주택 용지에 3, 4층짜리 건물이 100여 개나 들어서 있고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1층에는 ‘나홀로’족을 겨냥한 식당, 커피숍, 슈퍼 등이 들어서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기러기’ 신세를 한탄하는 직원도 많다. 고교 2학년인 자녀를 둔 김태영 식약청 사무관(48)은 이전 이후 동료 직원 3명과 함께 아파트를 빌려 살고 있다. 김 씨는 “애가 어리면 모르겠는데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같이 이사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혼자 내려왔다”며 “함께 살면서 세탁기를 쓰기도 번거로워서 금요일이면 속옷이나 양말 같은 빨래를 들고 서울로 올라온다”고 말했다. 유모 서기관(51)은 130여 명 규모로 식약청이 임대한 아파트에서 직원 3명과 살고 있다. 서울에서 약국을 하는 아내가 장모와 어머니 두 분을 모시고 대학생인 자녀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 유 씨는 “주말에 집에 가니까 아내가 얼굴을 붉히며 좋아하더라”며 “같이 내려올까 생각도 했지만 노인 분들이 여기 오시면 아는 사람도 없고 너무 적적해하실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곳의 한 기관장은 “나야 평생을 헌신한 사람으로 불만은 별로 없지만 젊은 직원들의 불편함은 상당하다. 힘들어하는 직원과 상담할 때면 이직을 고려해보라고 하기도 한다. 젊은 직원들은 10, 20년 넘게 이곳 생활을 해야 하는데 고민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휴직계 내는 여성 직원들

행정타운 인근에 터를 잡은 이들도 생활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오송 이전을 앞두고 한 국책기관 직원인 김모 씨(33)는 6개월 육아휴직계를 냈다. 이전은 작년 말에 이뤄졌지만 네 살짜리 딸아이를 봐줄 어린이집이 올해 1월에서야 일부 완공돼 몇 달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김 씨처럼 일부 직원은 어린이집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직장에 실망해 회사를 떠나거나 휴직을 선택했다. 오송으로의 이전 때문에 직장을 옮긴 6개 기관의 직원이 100여 명에 달한다.

김 씨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남편 때문에 지난해 12월 인근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생활여건이 부족한 데다 물가는 비싸 생활하기 빠듯하다. 직선거리로 2km 떨어진 오송역에서 행정타운까지 택시들은 미터요금을 받지 않고 5000∼6000원을 요구한다. 그는 “인근 식당의 자장면은 6500원, 칼국수는 6000원, 돌솥비빔밥은 8500원일 정도로 행정타운이 들어서는 순간 지역 식당들이 담합해서 가격을 올렸다”며 “마트, 영화관, 교육 등 시설은 부족한데도 물가는 서울 압구정동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버스가 2개 노선이 하루에 12회, 28회밖에 다니지 않는 등 교통여건이 안 좋아 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기름값마저 많이 올라 걱정이 많다. 자녀가 인근에서 한 곳뿐인 만수초교를 다니는 손유진 식약청 주무관은 “학원은 몇 군데 있지만 약국이 아직 없고 다음 달에 소아과가 오픈할 예정이어서 아이가 아플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청원=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