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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솔직히 말하면 가빈의 수준은…”

입력 | 2011-04-24 15:42:16


한국 프로배구에서 2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한 가빈. 스포츠동아DB

국내 프로배구에서 용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 V리그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를 살펴보면 그 답이 보인다.

2005시즌과 2008~2009시즌에 김세진과 최태웅이 MVP에 오른 것을 제외하고, V리그 7시즌 중 5번의 MVP를 외국인 선수가 차지했다.

2005~2006, 2006~2007시즌 연속으로 MVP는 미국 출신 숀 루니에게 돌아갔고, 2007~2008 시즌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출신의 안젤코가, 2009년부터 이번 시즌까지 두 시즌은 캐나다 출신 가빈 슈미트(25)가 MVP에 올랐다.

가빈을 앞세운 삼성화재는 2010~2011시즌 V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대한항공을 누르고 통산 5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가빈은 챔피언전 4경기에서 무려 195득점을 터뜨리며, 팀 우승을 이끌어 '가빈 화재'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가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 일부에서는 '몰빵배구'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가빈 화재'라…. 1995년 창단 감독으로 16년 동안 삼성 지휘봉을 잡고 각종 대회에서 23차례나 우승을 이룩한 '명장' 신치용 감독이 들으면 정말 섭섭한 소리일 수도 있다.

사실 가빈은 신 감독의 손을 거쳐 완성된 선수다. 가빈은 2007년 현대캐피탈에서 테스트를 받았으나 떨어졌다.

가빈을 최고의 용병으로 키워낸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 동아일보DB

그런 그를 2009년 봄 데려온 신 감독은 뛰어난 조련술을 발휘해 엄청난 파괴력을 갖춘 공격수로 탈바꿈시켰다.

성실한 가빈은 신 감독의 지도 하에 착실하게 훈련에 임했고, 동료 한국 선수들과 호흡도 척척 맞추면서 한국 배구에서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이런 배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가빈 화재'니, '가빈에 몰빵 하는 배구'니 하는 말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감안해도 가빈은 너무 강하다.

국내 배구계의 '지존'이라 할만하다. 가빈이 제 컨디션으로 나서면 삼성화재를 상대할 팀이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런 가빈이 내년시즌에도 삼성화재에서 뛸 것 같다. 삼성화재 구단은 가빈을 반드시 잡겠다는 뜻을 이미 밝혔다.

가빈이 다음 시즌에도 또 국내에서 뛰게 되면 다른 팀에게는 정말 큰일이다.

이 뿐만 아니라 프로배구의 흥행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남자 배구의 인기가 2010~2011시즌에 많이 올랐다고 한다. 만년 3위 팀이었던 대한항공이 정규리그에서 우승하면서 대한항공 삼성화재 현대캐피탈 LIG손해보험 등이 각축전을 전개하며 초반 관심을 끌었다.

2005~2006 시즌부터 2시즌 연속 현대캐피탈의 우승을 이끌었던 미국 출신 용병 숀 루니. 동아일보DB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전부터 가빈의 폭발적인 공격력 앞에 상대팀들이 족족 나가떨어지면서 포스트시즌의 흥미는 크게 떨어진 게 사실이다.

가빈에 필적할 만한 용병이 다른 팀에 있었더라면 치고 받는 박빙의 승부로 프로배구의 열기가 엄청나게 뜨거워졌을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국제무대의 기준으로 봤을 때 가빈의 실력은 어느 수준일까.

전문가들은 파워 등 공격적인 면에서 가빈의 실력이 대단하지만, 아직 이탈리아나 러시아 등의 유럽 상위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것으로 평가한다.

가빈은 캐나다 배구대표 출신. 국제배구연맹(FIVB) 4월 남자배구 국가별 랭킹에 따르면 캐나다는 22위다. 바로 다음의 23위가 한국.

랭킹 1위는 브라질, 2위 러시아, 3위 세르비아, 4위 쿠바, 5위 미국, 6위 이탈리아의 순이다.

국가랭킹으로 실력을 단순히 비교할 수 없지만 브라질이나 러시아 터키 등 유럽의 배구 빅리그에 가면 가빈 정도의 실력을 가진 선수들은 많이 있다.

그렇다면 다음 시즌 가빈과 삼성화재의 독주를 막으려면 다른 팀들도 빅리그에서 선수들을 스카우트 하면 된다.

문제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연봉 상한 규정. 현재 용병 선수 최고 연봉 한도는 28만 달러(약 3억 원)에 묶여 있다. 이 때문에 이 가격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할 선수를 잘 뽑는 팀이 우승할 확률이 크게 된다.

이 점에서 필자는 국내 남자 프로배구에서 계속 용병 제도를 유지할 생각이면, 연봉 한도를 한번 깨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사실 연봉 한도가 있지만 국내 구단들은 계약할 때 세금을 부담하는 조건을 내걸고 집이나 통역, 승용차 등을 모두 제공하기 때문에 실질 연봉은 35만 달러(약 3억78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봉 한도를 깨도 50만 달러(약 5억4000만 원) 정도의 연봉이면 가빈과 필적할 만한 외국인 선수를 데려 올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프로축구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는 이적료 포함해 몸값이 약 3800억 원에 달하고, 1년에 연봉과 기타수입을 합해 490억 원을 벌어들인다.

이런 메시도 11명의 조직력이 바탕이 되는 축구의 특성상 혼자만의 활약으로 팀 우승을 쉽게 이끌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국 프로배구에서 가빈은 팀 우승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국내 프로배구 남자 7개 팀 중 가빈을 능가할 용병 수입에 50만 달러 정도를 투자하는데 주저할 팀이 있을까.

글쎄…, 군 팀인 상무 신협을 제외하고는 없지 않을까.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