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상무부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냉장고에 대해 반(反)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냉장고를 한국 내 판매가격보다 싸게 원가 이하로 팔고 있다는 혐의다. 한때 세계 1위였다가 미국 시장 점유율이 10% 이하로 떨어진 월풀의 조사 요청을 상무부가 수용한 것이다. 한국 업체들이 저금리 금융과 근로자 훈련기금 같은 지원을 받는 식으로 정부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다고 월풀은 주장했다고 한다. 한국산 냉장고에 대한 반덤핑 조사는 미국의 통상정책이 한국산 제품에 대한 제소가 한창이던 1980년대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애플이 특허 침해를 했다며 삼성전자를 제소한 것도 배경이 비슷하다. 삼성은 애플에 중요한 부품 공급자다. 거꾸로 말하면 애플은 삼성의 최대 고객이다. 그런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단순한 특허 침해 사건일까.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태블릿 시장에서 최대 도전자인 삼성을 견제하려는 게 제소 이유”라고 해석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사상 최대의 수출(4674억 달러)을 기록하며 이탈리아 벨기에를 제치고 세계 7위 수출국이 됐다. 반면 미국은 해마다 무역적자 신기록을 세우는 중이다. 미국의 작년 수출실적은 전년보다 17% 많은 1조8300억 달러였지만 수입이 더 크게 늘어 무역적자는 전년보다 33% 증가한 4978억 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미국 정부는 2015년 수출 목표치를 3조1400억 달러로 잡고 수출 진흥에 나섰다.
▷미국의 강화되는 통상정책은 신(新)중상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 수출입은행의 프레드 하크버그 총재는 이달 초 적극적인 수출금융 지원을 통해 미국을 수출 1위국으로 올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세계 1위 제조국인 미국이 수출시장에서 중국과 독일에 뒤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며 “중국 등이 수출금융을 불공정하게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금융산업 경쟁력에 자신감을 더 잃은 미국이 제조업과 수출 확대에서 활로를 찾는 것일까.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