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의 허들을 하나하나 넘자, 열망의 힘을 믿으며… ”
두 고교생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18일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운데)에게 따뜻한 조언을 듣고 난 충남 천안여고 강슬기 양(왼쪽)과 강원 원주삼육고 권준혁 군은 “인생에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친구와의 경쟁이 아니라 가슴에 큰 꿈을 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생이 뽑은 최고의 멘터이자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로 잘 알려진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의 조언이 궁금했다. 충남 천안여고 2학년 강슬기 양(16)과 강원 원주삼육고 3학년 권준혁 군(17)이 진로에 대한 불안, 경쟁에 대한 부담, 대입 스트레스를 가득 안고 18일 서울대의 김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조언을 듣고 싶어서다.
김 교수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24시간에 비유할 때 고교생의 인생시계는 고작 새벽 5시쯤”이라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중학생, 재수생인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김 교수의 조언을 듣다 보면 학부모로서 자녀의 고민에 어떤 태도를 가질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발견할 만하다.
○ ‘미래의 나에게 미안해하지 말자’
“수많은 고교생이 대학이 인생의 종착역인 것처럼 삽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부하며 스펙을 쌓고 경쟁의 스트레스 속에 자신을 내던지죠. 경쟁하지 않고 마음대로 살면 좋겠지만 경쟁은 불가피합니다. 사실 경쟁 없는 사회란 없다는 말입니다.”(김 교수)
경쟁 때문에 괴롭다는 고교생에게 김 교수는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좌절이다. ‘경쟁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네 멋대로 살라’는 식의 조언을 내심 기대했던 걸까. 그 대신 김 교수는 경쟁을 ‘성공적이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 보라고 했다. 모두의 앞에 넘어야 할 인생의 허들이 있다. 대학입시, 취업, 결혼, 승진…. 허들은 계속 된다. 눈앞의 허들을 잘 뛰어넘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비결이다. 뛰어넘는 힘은 ‘미래의 나에게 미안해하지 말자’는 각오에서 나온다. 미래의 더 나은 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준비하는 태도가 경쟁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힘이 된다.
○ 결승점을 모른다면? 눈앞의 허들을 넘어라!
목표 없이 공부하는 고교생이 많다. 중간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비하지만 인생에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은 무모해 보이고 잘 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과 동떨어져 있다. 꿈만 좇자니 부모와 사회가 말하는 인정받는 일과 거리가 멀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머릿속은 복잡하다.
“아들이 인터넷강의를 듣고 있어요. 팔짱을 끼고 모니터를 봅니다. 스타강사의 강의를 신나게 듣습니다. 그 순간엔 어떤 문제든 풀 것 같죠. 시험에 나오면 풀 수 있을까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명문대에 가겠다는 목표를 가지면 명문대에 못갈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 인강을 들으며 공부한 것을 한 문제도 틀리지 않겠다는 목표를 가지면 명문대에 합격할 것’이라고요.”
하루하루 허들을 잘 넘다 보면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결승점을 몰라 고민이라면 하루하루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실천해 보자. 오늘의 계획.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와 도전을 충실하게 해결하는 내가 되기.
○ 월급 40만 원 시간강사 버틸 수 있었던 건? 열망의 힘
“교수님께서는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열정과 보람을 기준으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열망’을 따라야 어려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수가 되기 전 2∼3년간 시간강사를 하시면서도 학생을 가르치고자하는 열망을 따르셨는데요. 훨씬 더 긴 시간, 혹은 지금까지도 교수가 되지 못하셨더라도 열망의 힘을 믿을 수 있으셨을까요?”(강 양)
김 교수는 “교수가 되는 데 훨씬 더 오래 걸렸더라면 지금 더 분명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열망의 힘’을 믿어보라”고 말했다. 서울대에 임용되기 전 대한민국에서 최고라는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김 교수에겐 학생을 가르치고 학생과 어울리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시간강사로 일할 당시 월급은 평균 40만 원. 하지만 김 교수는 연구소 제의를 거절하고 2년을 더 버텼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견딜 수 있었던 건 학생을 가르치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는 “‘깊은 바닥’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아래가 안 보이는 바닥’이 두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고3 수험생인 권 군은 수능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조여 온다. 김 교수의 아들도 대입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에게 김 교수는 어떤 조언을 해줄까?
“곧 대학축제인데 재수학원에서 책하고 씨름할 아들을 생각하면 불쌍해요. 하지만 결국 자신의 현실에 치열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나은 미래를 얻을 수 있어요. 지금 겪어야 하는 고생은 형태만 바뀔 뿐이지 삶에서 계속됩니다. 자신을 책임지는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연습하는 기간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김 교수)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