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귀신 vs 촐랑귀신 너무도 달랐던 ‘鬼格’
최근 본 흡혈귀 영화 중 가장 눈여겨볼 작품은 2008년 제작된 스웨덴 영화 ‘렛 미 인(Let The Right One In)’과 할리우드산 ‘트와일라잇(Twilight)’이었다. 두 영화는 뱀파이어를 10대 소녀, 소년으로 설정하는 혁신으로 충격을 주었다. ‘렛 미 인’이 더 사색적인 예술적 가치를 지향했다면, ‘트와일라잇’은 ‘샤방샤방’한 남녀주인공을 통해 ‘10대들의 데이트용 흡혈귀영화’라는 상업적 음모(?)를 심어놓았다.
아, 예술적 성취와 상업적 성취를 각각 거둔 두 영화는 왜 이리도 질적인 차이가 극명할까. ‘렛 미 인’과 ‘트와일라잇’의 두 번째 시리즈인 ‘뉴문(New Moon·2009)’을 비교해보자.
반면 ‘뉴문’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수다스럽다. 영화 속 청춘남녀는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한다’를 남발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100배 정도 더 말을 하지만 정작 뇌는 없는 것만 같다. 일단 10대 소녀관객의 오감을 자극해야 한다는 목적에서인지, 남자주인공들은 초콜릿 복근을 과시하려 안달이 났다. 여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서 머리에 피가 흐르자, 뒤쫓아 온 늑대소년이 멀쩡하게 입고 있던 티셔츠를 훌러덩 벗어(사진②) 돌연 그녀의 피를 닦아주는 게 아닌가(이런 부자연스러운 시추에이션이?).
게다가 난 이 영화 속 뱀파이어 청년처럼 10원짜리 표정을 짓는 주인공을 전에 본 적이 없다. 사랑하는 소녀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 자의 모습을 보라(사진③). ‘소녀 관객들아, 정말 멋지지 않니? 이렇게 애상적이면서도 로맨틱한 표정을 지을 수가! 완전 반했지?’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
반면 ‘렛 미 인’에서 흡혈귀 소녀를 보여주는 방식은 시적이다 못해 사색적이다. 소녀가 흡혈귀의 본색을 드러낸 뒤 소년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찢어 죽이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조차 영화는 차가운 호흡을 유지한다. 입가에 피가 철철 흐르는 흡혈귀의 모습이 아니라 오로지 슬프고도 행복해하는 야릇한 두 눈만을 보여준다(사진④). 보여주기보다는 더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