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당직자 제보 전해듣고 71차례 통화친인척-측근 ‘토지-주택-소득’까지 조사
2007년 대선 정국의 핵심 이슈였던 ‘투자자문사 BBK 관련 의혹’의 당사자인 김경준 전 BBK 대표의 부인 이보라 씨 등이 이미 1년여 전에 뒷조사 대상에 올라 있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대선 이후 서울중앙지검은 ‘국가정보원 이명박 TF 사건’을 본격 수사해 2009년 7월 고 씨를 기소했다. 이후 법원은 1년 8개월여 동안 재판을 한 끝에 고 씨의 뒷조사를 불법으로 판단했다.
○ 사돈의 8촌까지 샅샅이 조사
고 씨가 개인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활용한 정부 기관은 옛 행자부, 옛 건교부, 법무부, 국세청, 경찰청 등 5곳이었고 이들 기관을 통해 받은 자료는 총 563건이었다.
뒷조사 대상자는 우선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와 처남 김재정 씨, 맏형 이상은 씨 등 일가친척이었다. 정보 열람 횟수가 늘면서 이 대통령 형제자매 및 그 배우자, 둘째형 이상득 한나라당 국회의원 일가, 누이동생의 남편, 김 여사의 둘째언니 등 이른바 사돈의 8촌까지 확대됐다.
또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인 신현송 전 대통령국제경제보좌관, 김백준 대통령총무기획관 등 이 대통령의 참모그룹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당시엔 투자자문회사인 BBK 관련 의혹이 불거지기 전이었으나 김경준 전 BBK 대표의 부인 이보라 씨, 김 씨의 장인인 이두호 전 보건사회부 차관, BBK 직원의 주민정보까지 조회한 점이 눈에 띈다.
고 씨는 2006년 11월 3개월여 동안 뒷조사한 내용을 종합해 ‘이 사장(이 대통령 지칭) 보유 현황’이라는 42쪽짜리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어떻게 활용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판결문에는 “고 씨가 보고서를 폐기하지 않은 채 컴퓨터에 보관해두고 수시로 확인했고 2007년 6월 언론 보도를 보고 파일에 추가 기재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만 돼 있다.
고 씨는 검찰 조사와 공판 과정에서 국정원이 2004년 국정원장의 지시로 부패척결 업무에 집중하게 되면서 비리 첩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해왔기 때문에 이 같은 조사 활동이 국정원 직원의 적법한 직무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주장했다. 또 직속 상급자인 강모 과장의 승인을 받고 정보를 열람했고 이후에도 수차례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 씨는 “서초동 대검 청사 뒤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차명 부동산이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는 취지의 얘기를 지나가는 말로 들었고 절대 무리하지 말고 여의치 않으면 안 해도 좋다고 당부했다”며 고 씨와 상반된 진술을 했다. 뚜렷한 물증 없이 진술이 상반되면서 재판부도 국정원 윗선에서 개입했는지에 대해선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고 씨가 확보한 자료가 정치권으로 유입됐는지도 불명확한 상태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고 씨가 2006년 7∼11월 최초 제보자인 민주당 당직자 김 씨와 71차례 통화하고 수시로 식사를 함께하는 등 정보를 교류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김 씨에게 정보가 유출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 ‘공직자 비리 정보 수집은 국정원 업무?’
그러나 재판부는 국정원의 이런 의견에 대해 “국정원은 업무수행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국정원법에서 직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공직자의 부패나 비리행위를 적발하기 위한 정보수집 활동은 국정원 직원의 직무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