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이후 5년 만에 MBC '내 마음이 들리니'로 안방극장 복귀●청각장애라는 비밀을 간직한 캐릭터 '동주' 매력적●'살인미소', '회춘'?●착한 드라마, 착한 배역에 특화된 배우 되고파
지난 1월 제대하고 최근 MBC 주말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로 안방극장에 복귀한 김재원. 다즐엔터테인먼트 제공
새하얀 얼굴… 웃을 때 선한 반달눈… 치아 10개가 활짝 드러난다. 탤런트 김재원(30)은 얼굴 가득 봄을 안고 있었다. 2002년 드라마 '로망스'로 장안의 여심을 녹였던 '살인미소'의 귀환이다.
"바람이 많이 부네요. 녹음기에 잡음 들어가겠어요. 안으로 들어가서 하시죠."
인터뷰 약속장소였던 일산 MBC드림센터 7층 옥상정원에서 출연자 대기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대기실 한쪽에 있는 작은 싱글 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내 마음이 들리니'(이하 내마들) 강행군 촬영 중이었다. 침대 위에는 대본 서너 개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침대 위에 털썩 걸터앉은 그는 기자들에게 의자를 권했다. 나지막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내 마들'은 청각장애인이면서도 장애를 숨기고 살아가는 외로운 남자와 일곱 살 지능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캔디 같은 여자가 만나 진실한 사랑을 하는 이야기를 서정적인 화면에 담은 작품이다. 김재원은 "수채화 같은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2001년 SBS TV 시트콤 '허니허니'로 데뷔한 김재원은 드라마 '형수님은 열아홉'(2004), '원더풀 라이프'(2005), '위대한 유산'(2006) 등에 출연했다. 2009년 입대해 국방홍보지원병으로 복무하면서 국군방송 '위문열차'를 진행했다.
김재원이 연기한 차동주는 어린시절 사고로 청력을 잃었지만 그룹의 후계자로 살아남기 위해 장애를 숨기는 복잡한 역이다. 다즐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정의 달 5월에 어울리는 배우
-5년 만에 복귀했는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쉬는 동안 무슨 일을 했습니까.
"국내외 팬들도 만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였어요. 그 전에는 미니시리즈를 빠듯하게 찍었어요. 1년에 미니시리즈를 2~3개씩 찍어서 숨 돌릴 틈 없이 달려왔어요."
김재원은 2002년 김하늘과 공연한 MBC드라마 ‘로망스’로 스타덤에 올랐다. ‘살인미소’라는 별명도 이때 생겼다. 동아일보 DB
"요즘 많은 작품이 있지만, 좋은 작품에 캐스팅 된다는 것 자체가 어렵잖아요? 경쟁이 치열하니까요. 어머니도 저도 '내마들'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 정말 느낌이 좋았습니다. 문희정 작가님도 좋아하는 분이고, 김상호 감독님도 좋은 분이었어요."
"실은 전역하고 나서도 이런 작품이 있다는 얘기를 전혀 못 들었어요. 감독님도 김재원이 전역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고요. 제대하고 친한 감독님의 모친상에 갔다가 방송 관계자들을 만나 우연히 미팅 날짜를 잡게 됐고 1주일 만에 캐스팅이 됐습니다. 전역했으니까 해외여행도 가고 바람도 쏘고 싶었는데 선뜻 작품이 들어오니 어안이 벙벙하게 기분이 좋았고 어머님도 오랜만에 아들이 좋은 작품 해서 기분 좋았던 것 같습니다. 걱정 많이 하셨으니까요."
-'내 마들'의 매력은 뭘까요.
"그동안 작품을 하면서 제가 원해서 찍은 것도, 회사의 운영 방침에 따라 원치 않아도 했던 것도 있어요. 연기자로서 자신이 가지는 촉이 있잖아요. 본인이 마음이 드는 작품을 할 때 더 신이 나죠. 대단히 큰 성공을 이뤘다고 보긴 어렵지만, 많은 사랑을 받은 게 그런 작품들이었어요. '내 마음이 들리니'라는 제목이 뭔가 느낌이 남달랐습니다. 문구가 나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느낌이랄까. 제목 로고 자체도 아주 예뻤어요."
-드라마 제목 '내 마음이 들리니?'는 무슨 의미일까요?
"사람이 말로서 표현해서 듣는 것이 있으나, 이야기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알 수 있는 마음이 있어요. 극 초반 '귀를 막고 들으면 모든 소리가 들려, 마음이 들려'라는 말을 작은 미숙이가 한다. 그런 취지에서 제목이 정해졌어요."
▶'막장' 넘치는 세태…'착한' 작품 제작 여건 아쉬워
2005년 MBC 드라마 ‘원더풀 라이프’에서 주인공 한승완 역을 맡은 김재원. 동아일보 DB
여기까지 말한 그는 우리나라 드라마 영화 시장이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온화한 작품이 명작 칭송은 듣지만, 투자를 못 받아 제작환경이 나쁘다.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시장이 좁아서 더 그런 지도요.
"제가 작품을 새로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이번에 연기변신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입니다. 너무 싫었어요. 제가 연기자로서 해외 작품 국내 작품 다 보잖아요? 저는 배우나 감독을 보고 작품을 골라요. 글로벌 시장에서는 그 배우와 감독이 캐릭터 화 돼 있어요. 예를 들어 휴 그랜트라면 로맨틱 코미디, 로빈 윌리엄스는 휴먼 장르인거죠. 우리나라는 시장이 작다 보니 한 연기자 감독에게 너무 이런저런 걸 요구합니다. 연기를 너무 잘하는 선후배라고 해도 자세히 보면 그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캐릭터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캐릭터 급변을 좋아하다 보니 그런 점이 아쉬웠는데, 다행히 이 작품은 따뜻해서 '잘됐다' 했죠."
-따뜻한 역할만 하고 싶었던 건가요?
"꼭 그것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얼굴이 살인, 흉악범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웃음) 저는 영화를 볼 때도 휴먼드라마를 좋아해요. 보고 내 가족 내 주변을 따뜻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요. 하지만 그런 작품은 많지 않아요. 나오면 살인이고, 불륜이고, 심각해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뭐다 연예인 지망생이 참 많죠. 청소년들은 연예인을 보고 자극을 받아요. 그런데 우리 매스미디어는 참 심각하죠. 사회적인 책무를 생각해서 작품도 너무 극적으로 가지 말고, 조금은 따스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로 갔으면 해요. 저는 될 수 있으면 그런 작품으로 가고 싶지만, 우리나라 작품의 한계가 그런 내용은 거의 없어요."
-원래 그런 생각을 했던 가요? 아니면 군 복무를 하면서 생각이 변한 건가요?
"데뷔 때부터 그런 장르를 좋아했어요. 제가 찍은 작품 보면 그렇게 극한으로 가는 건 없어요. 사실은 몇몇 놓친 작품 중에 잘된 작품도 있지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욕이 있고 베드신이 있고 살인이 있으면 일단 심정적으로 싫어요. 누구나 어떤 분야에 특정화 돼 있잖아요. 요즘 틴에이저 후크송이 인기라지만, 그 음악 장르 외에 서정적이고 조용한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수를 위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연기자 파트 중에서도 그런 걸 하고 싶어요."
▶난데없는 '회춘설'…10년을 거스르는 동안
시청자도 오랜만에 김재원의 매력을 접해서일까. '내마들' 촬영장 스틸이 공개될 때마다 인터넷에는 '회춘설'로 난리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라는 김하늘의 명대사를 남긴 '로망스' 시절보다 더 젊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전하자 그는 배시시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
"글쎄요, 살이 빠져서 그런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게 바로 술이에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다 보니 낮술도 하고…. 살이 80~90㎏까지 찌더군요. 관리를 안 하면 이렇게 갑자기 망가질 수도 있구나 싶었죠. 상병 말기부터 천천히 뺐어요. 지금은 184㎝에 67㎏인데, 여전히 다이어트 중입니다."
날씬해진 덕분에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한 컷 한 컷이 화보"라는 칭찬을 듣는다. 누리꾼들은 그가 벚꽃 아래서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은 화면을 편집해 게시판에 올리기도 한다. 그가 해맑은 표정으로 열대어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어항 신'은 디캐프리오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따로 없다는 반응. 한 누리꾼은 이 장면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제가 '키싱 유(kissing you)'를 삽입해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봐도 피부가 나이보다 참 맑고 투명해 보였다. 인터뷰 직후 매니저에게 '동안 피부의 비결'을 묻자, "타고난 것"이라는 실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피부과의 도움을 받지 않았냐고 재차 묻자, "사이판 촬영을 다녀와서 한 번 관리 받으러 간 적이 있지만, 박피를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드라마 초반인데도 촬영 일정이 몰아치나 봅니다.
"계속 밤새고 있습니다. 몰아치는 게 아니라 밀렸어요. 오늘 밤새 촬영해서 내일 분량 나가야 해요. 스태프들이 하루에 2시간 이상 잔 적이 없어요."
인터뷰 날도 빨개진 눈을 한 그는 몹시도 피곤해 보였다. 인터뷰 후 그가 4일 연속 밤샘 촬영을 하다보니 피로 누적으로 응급실로 실려가 링거를 맞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상대역인 황정음(26)에 대해선 “정음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봤는데 귀여운 구석이 많다”라고 말했다. 다즐엔터테인먼트 제공
▶'에너자이저' 황정음, 여교생 때 봤는데…
-러브라인의 상대방, 봉우리 역의 황정음 씨는 어떤 배우인가요?
"그 친구가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 봤어요. 보면 귀여운 게 있어요. 주인공이건 조연이건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자질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에요. 어떤 친구들은 자기 신만 찍고 가는데 연기는 리액션이라 그래선 안돼요. 정음 씨는 발랄하고 열심히 해서 좋아요. 피곤해도 에너지가 넘치죠. 촬영하다 보면 서로 민감한데 그런 면에서 훌륭한 친구입니다."
-아역을 했던 강찬희 군이 정말 재원 씨를 닮았어요.
"많이 얘기는 못해봤어요. 그 아이도 낯을 많이 가려서. 고맙죠. 드라마 찍으면서 아역이 나온 건 처음입니다. 16부작 미니를 주로 찍어서 아역이 나올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30부작이다 보니까 아역이 나올 수 있었죠. 찬희와 정음이 아역 새롬이 둘 다 어린 친구인데 정말 드라마 초석을 잘 다져줬어요. 물론 정보석 선생님, 윤여정 선생님이 전체적인 틀을 잘 짜주셨지만."
"1,2부를 보면서 감독님에게 '아 애들 러브 라인이 정말 예쁘다'고 문자를 보냈어요. 같이 둘이서 막 하는 게 보면서 저도 빨리 애들 나왔으면 좋겠는 거예요. 귀여우니까. 찬희나 새론이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그대로 연기를 해서 봤을 때 연기가 꾸밈이 없어 좋았어요. 퓨어(pure)하달까. 피부들도 정말 좋고."
-어른이 된 동주는 어떻게 변해 갈까요?
"사실은 굉장히 복잡 미묘한 아이가 됩니다. 후천성 청각장애로 아예 못 듣고. 의붓아버지에 대한 복수심도 있고, 외로운 아이죠. 말하기 싫고 수화로 표현하고 싶은데 어머니의 강요로 청각장애를 감춰야 하니까 평상시에 스트레스를 받는 애입니다. 처음에는 날카롭다가 극 후반에 가면서 원래 찬희가 연기했던 것처럼 맑은 천성이 나와요. 16년 동안 교육받고 세뇌된 것을 봉우리와 봉영규(정보석) 부녀를 만나면서 맑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가난이 싫었던 봉우리의 오빠 미루가 동주 모자를 따라가 장준하로 이름을 바꾸고 삽니다. 현재까진 동주와 준하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나오는데, 두 사람 관계가 변하지 않습니까. 준하는 동주의 원수, 의붓아버지 최진철(송승환)의 친아들이잖아요?
"엄마 태현숙(이혜영)이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 그의 아들을 데려다 키운 것이죠. 동주는 아직 그 사실을 몰라요. 단지 동주의 모든 비밀을 아는 사람이 장준하죠.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휴식처 같은 형입니다. 하지만 서로의 신분을 알아가면서 서로 어긋나게 됩니다."
-장준하가 봉영규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우리와도 삼각관계가 될 수 있나요?
"그렇죠. 드라마이다 보니 당연히 여자 친구와 러브라인이 있고, 준하도 우리와 사실 혈연이 아니고 아무런 관계가 아니니까요. 여자로서 다시 볼 수 있죠."
데뷔 11년차. 친정으로 돌아온 김재원은 “신인처럼 신나서 일한다”고 한다. 그는 끝으로 “청각 장애인을 비롯해 장애를 가진 모든 분들에게 선물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즐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드라마로 실업자를 면했다
-청각장애라는 비밀을 간직한 캐릭터입니다. 재원 씨도 비밀이 있나요?
"누구나 있는 일이죠. 부모님에게 보여 드리지 못한 성적표라든지.(웃음)"
-청각장애 연기 위해 준비한 점은 따로 있나요?
"청각장애 관련 작품은 다 봤어요. 다른 장애를 지닌 사람 소재로 한 영화 다 봤고."
-이전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로 실업자를 면했다'고 했어요.
"제가 늦은 나이에 군에 가서 애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형으로서 상담을 많이 해줬어요. 남자들은 군에 와서 '앞으로 뭘 해 먹고 살까' 걱정을 많이 해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죠. '형 나가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털어 놓으면 저는 '야 잘되겠지'라고 위로해주죠. 막상 제가 병장이 되니 나 또한 고민이 되는 거예요. 항상 걱정거리를 들어만 주다가 내가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혼자서 걱정만 한 거죠. 나가자마자 러브콜 받으니 얼마나 기뻐요. 그래서 그런 심정을 말한거죠. 실직자 면했다고."
-막상 '내 마들'에 출연하고 보니 어떤가요?
"가장 중요한 건 한 회 한 회 대본을 받았을 때 '아우 재밌다!' 이게 제일 중요해요. '아흐, 이건 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 속상한 거예요. 재밌으면 아우 일하는데 신 나잖아요."
-웃을 때 두 번째 어금니까지 보입니다.
"잇몸이 많이 보이죠."
-2001년 데뷔해 만 10년 된 연기자입니다. 김재원은 어떤 배우입니까?
"정의까지 내릴 만한 '짬 밥'은 아니고요. 지나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현장에 나오다 보니까 10년 넘은 분 13년 만에 나온 분도 있어요. 저는 신인의 마음으로 다시 즐겁게 합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대본 리딩을 하러 자리를 떠야 했다. 막간을 이용한 짧은 인터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무척 미안해하며 일어서는 그에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느냐고 물었다.
"동화 같은 드라마가 됐으면 해요. 청각 장애인을 비롯해 장애를 가진 모든 분들에게 선물이 되는 드라마가 되길 바랍니다."
막장이 판치는 드라마 세상에서 '내마들'이 큰 울림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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