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때우는 밥? 손님상에도 내놓던 별미!
하지만 오늘날 물만밥이 점잖은 식사는 아니다. 집에서 혼자 대충 끼니를 때울 때 먹는 밥이지 온 가족이 모인 식사 때나 손님을 대접할 때 차릴 수 있는 밥상은 아니다. 그런데 고문헌을 보면 예전에는 물만밥을 손님상에 내놓아도 전혀 흉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고려 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이 젊었을 때 원로들에게 인사를 다니는 장면이 목은집에 보인다. “이정당(李政堂) 집에서 물만밥을 얻어먹고 왔다”고 했고 “어제 철성시중(鐵城侍中) 댁과 박사신의 집에서 물에 만 밥을 먹었고 임사재 집에서는 성찬을 대접받았다”고도 적혀 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6년 기록에 역적모의를 취조한 기록이 있다. 평안도 도사 이운징의 취조 기록인데 친구가 찾아와 사랑방에서 담소하다 물에 만 밥을 먹은 후 헤어졌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한자로 수반(水飯)이라고 썼는데 지체 높은 양반이 제대로 먹는 식사였고 때문에 손님이 왔을 때도 가볍게 내놓는 식사 또는 별식이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물에 만 밥, 또는 물과 밥을 끓인 수화반(水和飯)을 먹는 것은 우리나라의 풍속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물에 눌은밥을 말아서 먹는 누룽지 문화가 발달한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지금은 혼자서 대충 먹을 때 이외에는 웬만큼 스스럼없는 사이가 아니면 물에 밥을 말아서 함께 먹지 않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도 물에다 밥을 말아 먹는 것이 제대로 된 식사법이었던 모양이다.
중국에서도 당송 무렵에 물만밥을 먹었다는 기록이 많이 보인다. 당나라 말기 사람인 유숭원의 금화자잡편(金華子雜編)에 저녁밥 먹기 전 점심으로 수반 몇 수저를 뜨는 데 그쳤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점심은 오찬이 아니라 저녁 전에 가볍게 먹는 간식이라는 뜻이다. 물에 끓인 밥으로 가볍게 요기를 한 것이다.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아예 송나라 수도 카이펑(開封)의 야시장에서는 거리에서 물에 만 밥, 구운 고기, 마른 육포 등을 판다고 적혀있다.
지금 한국과 중국에서는 남들 앞에서 물에 밥을 말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물만밥, 즉 수반의 풍습이 남아있다. 초간단 식사법으로 밥에다 뜨거운 찻물을 부어서 먹는 차즈케(茶漬け)라는 식사 습관이 그것이다. 이렇듯 밥 먹는 법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