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균 논설위원
요즘 기업 얘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화제다. MBC 수목 드라마 ‘로열패밀리’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회사 소유권을 둘러싸고 싸움을 벌인다. SBS 드라마 ‘마이더스’에서는 기업인 가족들이 대부분 불륜과 부도덕의 화신으로 나온다. 이런 드라마의 유행은 경제사정이 어려워지고 양극화가 심해진 것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경제 실패 주범 찾기 식 개혁 무리수
김대중 정부 시절 빚 많은 대기업그룹들은 환란의 주범으로 몰려 구조조정과 개혁을 강요받았다. 외채를 지나치게 끌어다 쓰는 바람에 나라가 빚더미 위에 앉게 되었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대주주들은 수년 동안 구조조정과 함께 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대주주 지분도 낮아졌으나 투자 여력은 바닥나 이후 한국경제가 난관에 봉착하는 한 원인이 됐다.
신용카드 위기와 집값 상승으로 힘들었던 노무현 정부도 재벌개혁을 부르짖었다. 대그룹의 총수 일가들은 3% 정도의 지분만 갖고도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니 소유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노 대통령의 신임을 배경으로 앞장섰으나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중도하차했다.
요즘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주장하는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의 말에도 대기업 책임론이 핵심을 이룬다. 청와대에서 노 정부 때의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곽 위원장은 “대기업이 국민의 미래 먹을거리가 될 신수종 분야의 개발이나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에 미온적인 것이 합당한 것인지, 국가 전체적으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국내의 인재와 자원을 독차지하면서도 국가경제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다.
주요 기업의 대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대주주라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게 맞다. 그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기업으로서도 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나쁠 것도 없다. 기업을 노리는 사냥꾼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는 데도 연금만 한 우호 지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과연 그럴 만한 자격을 갖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임명하는 공단 이사장이 정권의 이해보다 국민의 이익을 더 챙길지 의문이고, 연금 관리보다는 임직원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모럴 해저드가 걱정이다.
주주권 행사보다 연금 개혁이 먼저
국민연금공단의 기금 운용직에서 퇴직한 직원들은 상당수가 거래기관 임직원으로 재취업한다. 2006년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 기금운용직 퇴직자 46명 가운데 72%인 33명이 자산운용사 임원 등으로 재취업했다. 기금을 위탁 운용하던 거래기관 임원으로 재취업하는 것은 불투명한 유착 등 모럴 해저드를 초래할 수 있다. 연금공단이 투자한 기업에 퇴직자를 내려 보내는 것도 문제다. 투자가 퇴직 임직원들의 노후 보장까지 염두에 두고 결정된다면 투자의 엄격성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이런 행태가 대기업 경영행태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민들은 민간기업의 경영보다 국민연금의 건전한 운용에 더 관심이 많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