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동부 훈련스케줄 알 수 없을까”강 “술 약해진 형 체력부터 챙겨요”
이틀 전까지만 해도 챔피언을 향한 양보 없는 승부를 펼쳤던 KCC 허재 감독(왼쪽)과 동부 강동희 감독이 28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 에서 벗어난 두 감독이 25년 지기로 돌아가 활짝 웃고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프로농구 KCC 허재 감독(46)과 동부 강동희 감독(45)이 28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이틀 전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허 감독이 이끄는 KCC는 강 감독의 동부를 4승 2패로 꺾고 통산 5번째 우승컵을 안았다. 만약 승부가 7차전까지 갔더라면 이날 이들은 코트에서 열띤 작전 지시를 해야 했을 시간이었다.
허 감독은 “너랑 다시는 챔프전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고 미안함이 컸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형, 나는 달라. 다시 만나고 싶어. 형은 나를 이겨봐야 본전이겠지만 나는 언젠가 형을 꼭 꺾고 싶다”며 웃었다.
두 감독은 중앙대 시절부터 25년 동안 우정을 쌓아 왔다. 이런 인연 때문에 판정 항의와 파울 작전 등을 최대한 자제해 뭔가 2% 빠진 챔프전 같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도 두 감독은 “페어플레이를 약속했기에 지키려고 애썼다. 물론 서로에게 기분 상할 때도 있었다. 아무리 친하더라도 코트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한다. 그리고 끝나면 이렇게 다시 보니 얼마나 좋냐”고 입을 모았다.
1년 반 동안 끊었던 담배까지 다시 피우며 말 못할 고민을 드러냈던 강 감독은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는데 허재 형의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났다. 추승균, 강은식이 빠졌는데도 허점을 찾기 힘들었다”고 평가했다. 허 감독 역시 “동희가 감독 2년 만에 참 많이 컸다. 김주성과 윤호영을 활용한 함정 수비를 푸느라 진을 뺐다. 행운이 따른 우승이었다”고 겸손해 했다.
허 감독은 다음 달 중순 소집되는 농구 대표팀 사령탑으로 내정됐다. 허 감독은 “동희가 코치를 해준다면 든든하겠지만 팀을 맡고 있으니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어느새 진지하게 외국인 선수 문제 등 본업인 농구 얘기를 나누던 허 감독은 “아직 정규시즌 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 체력이 뛰어난 동부의 훈련 스케줄을 받아서 따라 해봐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강 감독은 “주량이 준 걸 보니 형 체력부터 챙겨야겠다”며 “내년 이맘때는 내가 형 자리에서 축하를 받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