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축산물품질평가사 여성 3인방 김초희-고유민-권하정 씨
새내기 여성 축산물 품질평가사 3인방이 냉장창고 안에서 도체를 만지며 등급을 매기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징그럽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축산물 먹을거리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초희 고유민 권하정 씨. 축산물품질평가원 제공
심사를 맡는 축산물 품질평가사들은 이곳에서 하루 6시간가량 무게 400kg이 넘는 도체(屠體)들과 씨름을 한다. 도체를 손으로 만져가며 연골 상태와 근육량을 체크하고, 그 자리에서 ‘마블링’ 상태를 살펴 등급을 매기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낮은 등급을 매겼다’며 거칠게 항의하는 식육업자들을 상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건장한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이 일에 최근 ‘여성 품질평가사 3인방’이 출사표를 냈다.
한창 멋을 부릴 나이인 김초희 씨(26). 그는 장화에 가운, 마스크와 모자는 물론이고 방한복까지 갖춰 입은 채 하루 5∼6시간을 냉장창고에서 보낸다. 도매상인들이 도착하기 전인 오전 6시에 출근해 그녀보다 10배는 몸무게가 더 나갈 도체들을 밀고 당기며 상태를 살펴 등급을 매긴다. 창고 일이 끝난 뒤에는 인근 닭 가공공장을 돌며 닭과 계란의 등급도 심사한다. “한번은 일반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처럼 멋을 내고 싶어 얼굴에 살짝 화장을 하고 나왔는데 퇴근할 때 보니 하도 땀을 흘려서 다 지워져 있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화장은 엄두도 안 내요.”
올해 입사한 여성 축산물 품질평가사는 김초희 씨 말고도 두 명이 더 있다. 대전·충남지원의 고유민 씨(29)와 광주·전남지원의 권하정 씨(28). 여성이 3명이나 입사한 것은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생긴 이래 ‘당연히 처음’이다. 10년 전만 해도 여성 품질평가사는 고작 3명에 불과했고, 현재 활동하는 품질평가사 240여 명 가운데 여성은 17명에 그친다. 이들 여성 3인방은 하나같이 “거친 분야이지만 축산물의 안전을 지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 중 맏언니인 고 씨는 2009년 품질평가사 시험에서 탈락한 뒤 쇠고기이력제 소비자콜센터에서 일하며 계속 도전한 끝에 합격했을 정도로 고집도 부렸다.
축산물 품질평가사는 등급을 매기는 일 외에 소비자 교육과 축산농가 지도활동도 한다. 먹을거리 안전에 민감한 주부들을 찾아다니며 검증받은 육류는 안전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각 농가에는 전염병으로부터 자식 같은 가축을 지켜 건강하게 키워낼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한다. 고 씨는 “생산자인 농가와 소비자인 주부들을 모두 만날 수 있어 더 즐겁다”면서 “먹을거리 안전을 지키는 현장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권 씨는 “처음 품질평가사를 한다고 했을 때 여자는 힘들 거라던 사람도 많았지만 막상 해보니 오히려 더 유리한 면이 많다”고 했다. 한 예로 쇠고기 등급을 매길 때는 등심의 면적과 등 지방의 두께를 일일이 재야 하는 만큼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들의 입사로 사무실 분위기도 밝아졌다. 축산물품질평가원 관계자는 “도축장을 끼고 남성들만 근무해 분위기가 딱딱했는데 최근 여성들이 하나 둘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며 “앞으로도 많은 여성이 품질평가사에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양=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